폭풍이 지나간 자리
대강당을 가득 채웠던 송민우의 자백 음성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미세한 화이트 노이즈마저 완전히 휘발된 소회의실 안에는, 오직 심장이 타들어 가는 듯한 무겁고 비린 정적만이 고여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교감 임용태가 쥐어짜듯 내뱉은 목소리는 보기 흉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의사봉은 바닥에 떨어져 대리석 타일 위를 볼품없이 뒹굴었다. 조금 전까지 김민우를 유출 진범으로 몰아세우며 강제 전학을 확정 지으려던 그의 오만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서태수 담임 교사는 지휘봉을 쥔 손을 부르르 떨며 스크린에 띄워진 보행 지문 분석 데이터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송민우의 아버지 백승철은 금시계를 찬 손목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며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그 고요를 깨뜨린 것은 소회의실 육중한 철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였다.
“지구대에서 나왔습니다. 교내 폭력 및 상해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내, 도현의 아버지와 막역한 사이이자 지역 지구대의 경위인 한정우가 대동한 순경들과 함께 회의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소회의실 내부의 얼어붙은 기류를 빠르게 스캔했다. 이미 도현을 통해 송민우의 폭력 자백 녹음 테이프와 보건실에 누워 있는 강준혁의 전치 3주 상해 진단서가 정식으로 인계된 상태였다.
“어, 경위님! 이게 무슨 오해이신지…… 학교 내부에서 가볍게 일어난 마찰일 뿐입니다.”
교감 임용태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한정우 경위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다. 어떻게든 재단의 비리와 유착 관계를 숨기기 위해 사건을 교내에서 덮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한정우는 단호하게 그의 손을 밀쳐냈다.
“가벼운 마찰이 아닙니다. 피해 학생은 오른쪽 어깨뼈가 쇠파이프에 타격당해 전치 3주의 심각한 상해를 입고 보건실에 누워 있습니다. 조금 전 전교에 송출된 음성과 영상 데이터 역시 명백한 폭력 및 협박 증거입니다. 피의자 송민우, 어디 있습니까?”
그 순간, 소회의실 구석에서 넋이 나간 채 서 있던 송민우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그는 문가에 서 있는 학생회 부회장 한지훈을 향해 절박한 시선을 던졌다. 한지훈은 송민우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다며 폭로한 장본인이자, 이 모든 판을 배후에서 설계한 기득권의 책사였다.
‘지훈이 형…… 제발, 나 좀 살려줘…….’
송민우의 애원 어린 눈빛이 한지훈의 얼굴에 닿았다. 그러나 한지훈의 얇은 입술 끝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지훈은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혐오스러운 시선으로 송민우를 내려다보았다. 기득권의 생존 방식은 언제나 빠르고 잔혹했다. 쓸모를 다한 사냥개는 그 즉시 꼬리를 잘라내는 것.
“한 경위님.”
한지훈이 차분하고 냉정한 목소리로 침묵을 깨고 앞으로 나섰다. 그의 얼굴에는 송민우와의 유착 흔적을 완전히 지워낸 듯한 가증스러운 결백함이 칠해져 있었다.
“학생회 부회장으로서 말씀드립니다. 이번 시험지 유출 사건과 강준혁 학생 폭행 건은 송민우 개인의 심각한 일탈이자 범죄 행위입니다. 저희 학생회는 송민우가 이런 추악한 짓을 배후에서 기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범죄자에 대해 경찰의 철저한 수사와 엄벌을 촉구합니다. 저희도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완벽한 꼬리 자르기였다.
송민우의 입이 경악으로 쩍 벌어졌다. 자신에게 모든 비리를 뒤집어씌우고 혼자만 빠져나가려는 한지훈의 위선적인 선언에, 그의 머릿속은 하얗게 타들어 갔다.
“한지훈……! 너, 네가 나한테 다 알아서 덮어준다고 했잖아! 시험지 빼돌린 것도 다 네가——”
“피의자 송민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동행하시죠.”
한정우 경위가 송민우의 양팔을 단단히 붙잡아 수갑을 채웠다. 차가운 금속성이 소회의실에 울려 퍼지는 순간, 송민우는 광기 어린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순경들의 힘에 밀려 질질 끌려 나갔다. 그의 뒤로 백승철이 안절부절못하며 전화를 걸기 위해 다급히 따라 나섰다.
소회의실 내부가 송민우의 체포로 발칵 뒤집힌 사이, 도현은 소리 없이 대강당 지하 방송 통제실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교복 상의 소매에는 감색 도서부 완장이 핀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도현은 주머니 속 아버지가 남겨준 은색 줄자를 만지작거리며 심호흡을 했다. 맥박수는 분당 68회. 완벽하게 차분한 평정심이었다.
‘폭풍의 첫 자락은 지나갔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도현은 ‘투명인간의 원칙(Invisible Rule)’을 가동했다. 시선을 바닥 15도 각도로 떨어뜨리고, 어깨를 약간 굽혀 존재감을 지운 채 웅성거리는 학생들의 틈새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복도 곳곳에서는 학생들이 전광판에 떴던 영상과 음성에 대해 흥분한 목소리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누구도 조용히 지나가는 도서부원 박도현을 경계하거나 바라보지 않았다.
도현은 구관 건물과 본관을 연결하는 어두운 복도 모퉁이를 지나며, 이미 자신이 사용했던 아날로그 납땜 도구와 무선 수신기 제어 장비가 세탁소 지하실 아지트로 완전히 이동되었음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현장 완전 복구’ 수칙은 완벽했다. 방송실 내부에는 그가 침투했던 물리적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도현이 미처 계산하지 못한 단 하나의 변수가 본관 4층 방송 통제실 안에서 고요히 잉태되고 있었다.
아수라장이 된 대강당을 뒤로하고, 학생회장 정우진은 조용히 방송 통제실 내부로 걸어 들어왔다. 전산실 직원들이 서버를 복구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우진은 그들을 지나쳐 메인 음향 콘솔 믹서 뒤편으로 향했다. 그의 수려한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 대신, 얼음장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지성이 번득이고 있었다.
정우진은 콘솔 뒤편의 복잡한 배선 더미를 하나씩 들춰보았다. 그의 손가락 끝이 메인 보드의 오디오 아웃라인에 닿았다.
‘디지털 침투가 아니었어. 보안 방화벽이 전혀 울리지 않은 이유는 아날로그 물리 우회였기 때문이야.’
우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이 메인 보드 구석, 납땜이 새로 된 듯한 미세한 은색 흔적에 머물렀다. 아주 정교하고 얇게 접착된 수제 납땜 조인트(Solder Joint). 일반적인 수리 흔적이라고 하기에는 선의 배치가 기묘하게 믹서 내부 주파수 수신 장치와 직렬로 연결되어 있었다. 누군가 수제 무선 수신 칩을 이 콘솔 내부에 직접 납땜해 매설했다가, 방금 전 급하게 떼어낸 자국이었다.
정우진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 미세한 납땜 찌꺼기 표면을 살짝 문질렀다. 은색 보풀과 미세한 그을음 냄새가 묻어났다.
“외부 전문 업자의 솜씨가 아니야. 공구가 마모된 흔적과 납의 성분이 지극히 구형 아날로그 규격이군.”
우진은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에서 ‘인지 분석 C급’의 날카로운 연산 알고리즘이 가동되었다. 교내의 삼엄한 CCTV 카메라 각도를 완벽히 피하고, 야간 순찰 시간을 피해 이 정밀한 납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인간. 그리고 기계 공작에 능숙한 아날로그적 기술을 가진 자.
정우진은 고개를 들어 통제실 천장의 감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 끝이 기괴할 정도로 매끄럽게 호선을 그렸다.
“학교에 아주 영리한 쥐새끼가 숨어 있었군.”
그 나지막한 속삭임이 방송실의 차가운 철제 콘솔 벽면을 때리며 스산하게 흩어졌다. 폭풍이 쓸고 간 자리 위로, 보이지 않는 설계자를 향한 정우진의 집요한 추격망이 소리 없이 좁혀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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