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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주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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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갠 성화고등학교의 아침 공기는 축축하고 비릿했다. 운동장 가장자리의 낡은 조경 수풀 사이로 스며든 물기가 흙냄새를 무겁게 끌어올리고 있었다. 본관 1층 소회의실의 굳게 닫힌 문 너머로 무겁고 숨 막히는 침묵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 정적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럼, 성화고등학교 학폭위 및 징계위원회의 최종 결정을 선고하겠다. 피징계자 김민우 학생에 대해 시험지 탈취 및 부정행위 혐의로 즉각적인 강제 전학 처분을——”


교감 임용태의 손에 들린 마호가니 의사봉이 공중에서 정점을 찍고 하강하기 시작한 바로 그 찰나였다.


대강당 지하 중앙 방송 통제실의 어둠 속에서 박도현은 숨을 죽였다. 그의 시야 속에서 모니터의 오디오 파동이 미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도현은 머릿속의 ‘마인드팰리스’를 가동해 본관 소회의실 내부의 움직임을 초 단위로 동기화해 연산했다. 도현의 오른쪽 주머니 속에는 아버지가 남겨준 은색 줄자가 차가운 금속성 감촉을 내뿜으며 그의 손끝에 닿아 있었다. 그것은 도현이 흔들릴 때마다 차가운 이성을 붙잡아주는 나침반이었다.


‘지금이다.’


도현은 방송 콘솔의 마스터 페이더를 단호하게 밀어 올렸다. 그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스마트폰 화면 위, 지민이 설계한 최종 송출 마우스 클릭 버튼 위에 얹어졌다. 도현의 검지 손가락 끝이 화면을 가볍게 누르는 순간, 교내 방송 제어용 무선 수신기가 가동되며 방송실 메인 믹서의 입력 신호가 스마트폰 오디오로 강제 전환되었다.


팅——!


본관 복도의 대형 LED 전광판, 급식실의 모니터, 대강당의 거대한 스크린, 그리고 징계위원회 소회의실 내부의 빔프로젝터 화면까지, 성화고등학교 전역에 배치된 모든 전자기기의 화면이 일제히 핏빛처럼 붉은 적색으로 암전되었다. 동시에 교실과 복도의 모든 스피커에서 거친 주파수 마찰음이 일며 전교생의 스마트폰 화면이 일제히 강제 송출 대기 모드로 전환되었다. 숨이 멎을 듯한 기묘한 정적이 학교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전산실! 당장 화면 복구 안 해?”


소회의실 상석에 앉아 있던 교감 임용태가 쥐어 올렸던 의사봉을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그의 대머리를 가리기 위해 길게 넘긴 옆머리가 땀에 젖어 흉하게 이마에 달라붙었다. 옆에 앉은 담임 서태수 교사는 신경질적으로 지휘봉을 쥔 채 스크린의 적색 화면을 노려보았고, 송민우의 아버지 백승철은 금시계를 찬 손목을 흔들며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순간, 방송 주임 교사가 앰프의 이상 출력을 감지하고 콘솔의 수동 차단기를 내리기 위해 본관 지하 전원실로 다급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 교사의 걸음걸이 템포는 분당 90보. 그가 본관 1층에서 지하 전원실까지 계단을 내려오는 데는 정확히 2분 40초가 걸릴 터였다.


도현은 스마트폰 화면을 켜고 지민에게 신호를 보냈다.


[PDH: 정 교사 이동 시작. P2P 스트리밍 백업 서버 활성화해.]


[LJM: 백업 서버 가동 완료. 이제 유선 전원을 차단해도 전교생의 스마트폰 팝업은 멈추지 않아. 송출 시작해!]


도현은 지민의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재생 버튼을 눌렀다. ‘최종 폭로의 단일화(One-Shot Exposure)’ 규칙에 따라, 적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전에 전교생과 학부모가 보는 앞에서 단 한 번에 상황을 종결짓기 위한 격발이었다.


치이익——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듯한 주파수 노이즈가 흐르더니, 이내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낯익은 목소리가 전교에 울려 퍼졌다.


[“야, 강준혁. 네가 요즘 쥐새끼처럼 기어 다닌다며?”]


송민우의 비열하고 오만한 목소리였다. 전교생이 숨을 죽였다. 교실에서, 복도에서, 그리고 징계위원회 소회의실 안에서 모두가 붉게 물든 화면과 스피커를 응시했다.


[“말해 봐. 체육관에 덫을 놓은 놈이 누구야? 그 도서관 먼지 새끼냐?”]


이어지는 것은 둔탁한 타격음과 준혁의 가쁜 신음이었다. 준혁이 몸을 던져 받아낸, 송민우의 폭력 현장 원본 음성이었다. 보건실 침대에 누워 오른쪽 어깨 전치 3주의 타박상 치료를 받으며 눈을 감고 있던 준혁의 귀에도 그 주파수가 닿았다. 준혁은 고통 속에서도 입꼬리를 올리며 조용히 웃었다. 도현이 약속을 지켰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지훈 부회장이 다 알아서 덮어준다고 했어. 민우한테 누명 씌우는 것도 다 그 새끼가 짠 판이니까.”]


결정적인 자백이었다. 한지훈의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소회의실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학생회 부회장 한지훈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음성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전교생의 스마트폰과 소회의실 스크린에 흑백의 CCTV 영상이 스트리밍되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던 시험지 유출 당일 오후 6시 42분, 교무실 기밀 금고 앞으로 침투하는 검은 실루엣. 화면 우측 하단에는 지민이 분석한 생체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매핑되어 출력되었다.


‘용의자 보행 패턴: 좌우 골반 비대칭 3.5도.’

‘송민우의 보행 지문과 99.8% 일치.’


도현이 다락방에서 철야 분석을 통해 완성했던, 송민우의 3.5도 골반 비대칭 보행 지문 데이터가 영상 위에 선명하게 겹쳐졌다. 단순한 심증이 아니었다. 과학적이고 움직일 수 없는 물리적 연계선이 전교생과 교사들, 그리고 학부모회 임원들의 눈앞에 적나라하게 증명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교감 임용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손에 쥔 의사봉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옆에 앉은 서태수 교사는 지휘봉을 쥔 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민우를 범인으로 몰아가려던 강압적인 기획이, 전교생과 학부모들이 지켜보는 공식 석상에서 단 한 번의 기습으로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민우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의 억울함이, 그의 풀 죽었던 어깨가 마침내 진실의 주파수 위에서 다시 펴지고 있었다.


대강당 지하 방송 통제실의 도현은 콘솔의 볼륨 페이더를 천천히 내렸다. 폭로는 성공적이었다. 징계위원회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민우의 누명은 완벽히 벗겨졌다. 송민우와 한지훈은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도현은 장동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신기 칩 회수하자, 동현아.”


도현은 도서부 완장을 고쳐 차며 조용히 말했다.


같은 시각, 대강당 뒤편의 그늘진 구석.


전교생의 웅성거림과 학부모들의 항의 소리로 아수라장이 된 현장 속에서, 단 한 사람만이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학생회장 정우진이었다. 그는 티 없이 맑은 피부에 완벽하게 정돈된 교복을 입은 채, 미동도 없이 대강당 벽면에 설치된 스피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온화하던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정우진의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선이, 마치 지하 방송실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도현의 심장을 겨누듯, 방송 스피커를 향해 일직선으로 고정되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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