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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류 영장과 군중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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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가 제국 수도 에스펜의 밤하늘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차가운 빗줄기는 빈민가의 조잡한 타르 지붕을 두들기며 음산한 소음을 만들어냈고, 공기 중에는 지독한 탄광 매연과 썩은 하수 냄새가 뒤섞여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을 턱턱 막히게 했다.


채도현은 가슴에 달린 황금빛 ‘수석 연구원’ 배지를 회색 학자 로브 안쪽으로 깊숙이 밀어 넣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대토론회에서 거둔 지적 승리의 전율은 이미 가신 지 오래였다. 그의 머릿속 기계식 계산기는 벌써 다음 위기를 향해 초고속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패배한 줄리안과 그의 부패한 아버지,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황실 재무부의 하수들이 이대로 물러설 리 없었다.


예감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중했다.


도현이 낡은 목조 주택의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빗소리를 뚫고 귀를 찢는 비명과 험악한 쇠붙이 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비켜라, 이 천한 평민 기집애야! 황실 재무부의 공식 영장이다!"


도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셋방 문은 이미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고, 그 안에서 붉은색 제복을 입은 사설 경비병들이 가재도구를 무작위로 밖으로 던져대고 있었다.


"오빠……! 오빠, 살려줘!"


안쪽에서 여동생 채유나의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도현은 빗속을 뚫고 부서진 문틈으로 급히 진입했다.


방 안은 그야말로 쑥대밭이었다. 낡은 서책들이 바닥에 뒹굴며 빗물에 젖어가고 있었고, 셋방 한구석의 초라한 침상 위에는 어머니 유씨 부인이 만성 폐질환으로 인한 지독한 기침을 토하며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상 앞을 가로막은 것은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 세금 징수관 바론 드 크루아였다.


"그만두시오!"


도현의 단호한 외침에 크루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손에는 붉은 양가죽으로 제본된 ‘강제 압류 집행장’이 들려 있었다.


"오, 드디어 오셨군. 공작가의 치맛자락을 잡고 기어 올라간 가짜 사위 놈이."


크루아는 채찍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거만하게 비웃었다.


"네놈의 숙부 채만식이 진 도박 빚과 가문이 체납한 황실 세금의 총액이 은화 오백 닢에 달한다. 당장 지불하지 못한다면, 이 집안의 모든 자산과 저 병든 노파, 그리고 저 어린 기집애의 신체까지 황실의 노예로 즉각 강제 압류하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크루아의 부하 하나가 유씨 부인의 침대를 거칠게 발로 찼다. 그 충격으로 침상 곁에 놓여 있던, 도현이 은화 백 닢을 겨우 마련해 달여 두었던 치료용 약탕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검붉은 약액이 바닥의 먼지와 뒤섞여 쓸모없이 흘러내렸다. 어머니의 생명줄과 같은 비약이 한순간에 파괴된 것이다.


"어머니……!"


도현이 제지하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거구의 경비병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어깨를 거칠게 밀쳤다. 무력이 전혀 없는 순수 학자 서생에 불과한 도현은 힘없이 뒤로 밀려나며 차가운 바닥으로 넘어졌다. 빗물과 먼지가 범벅이 된 바닥에 손목이 쓸리며 쓸린 상처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체력적 무력감과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랐다. 칼을 쥐고 마력을 부리는 자들 앞에서, 장부와 펜만을 쥔 자신의 육체는 이토록 유약했다.


"하하하! 꼴좋구나. 학술원에서 수석을 먹었네 어쩌네 하더니, 현실의 칼날 앞에서는 뼈도 못 추리는구나. 병사들! 저 병든 노파부터 끌어내라!"


크루아가 오만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도현은 바닥에 엎드린 채로 차갑게 웃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푸른빛 마력 대신, 숫자를 향한 극도의 이성적 광채가 빛나기 시작했다.


도현은 품속에서 에라스무스 원장에게 공식 수여받은 ‘압류 금지 특권 면허장’을 꺼내 들고 천천히 일어섰다.


"바론 드 크루아 징수관. 제국 학술원 헌장 제3조에 의거, 수석 연구원인 나의 개인 자산과 연구 도구, 그리고 직계 가족의 신변은 황실의 사법적 압류 대상에서 영구히 제외된다. 이 면허장을 무시하고 집행을 강행하는 것은 황제법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당장 병사들을 물리시오!"


크루아는 도현이 내민 면허장을 흘끗 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그것을 낚아채어 쩍쩍 찢어발겼다. 찢겨진 종이 조각들이 빗물에 젖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학술원 특권법?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황실 재무상 루드비히 님의 직인이 찍힌 이 붉은 영장 앞에서는 그 어떤 학술원의 법 따위도 통하지 않는다! 법을 집행하는 것은 칼을 쥔 우리다!"


크루아의 오만함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도현은 찢겨진 보증서를 보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크루아가 이성을 잃고 초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법이 통하지 않는 무법자에게는 법보다 더 무서운 무기를 들이밀어야 했다.


도현은 품속에서 또 다른 가죽 장부 한 권을 꺼냈다. 그것은 지하 사채업자 발타자르를 굴복시키고 사전에 확보해 두었던, 크루아가 평민들과 상인들에게서 갈취한 ‘비공식 세금 징수 명부’ 원본이었다.


도현은 부서진 셋방의 2층 발코니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발코니 아래로는 비를 피해 처마 밑에 모여 있던 빈민가 주민들과 남부 포구의 하역 노동자들이 웅성거리며 대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현은 빗속에서 목제 기계식 계산기의 태엽을 끝까지 감았다.

*타르르릉! 탁, 탁, 타닥!*

정교한 톱니바퀴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그의 고유 기량인 ‘군중 심리 통제술’이 활성화되는 순간이었다. 도현은 뇌내 연산을 통해 군중의 분노를 가장 효과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수치적 대비와 단어들을 도출해 냈다.


"빈민가 에스펜의 주민들이여, 똑똑히 들으라!"


도현의 나직하면서도 기이하게 멀리 퍼지는 목소리가 골목 전체를 울렸다. 군중들의 시선이 일제히 2층 발코니의 창백한 학자 청년에게 집중되었다.


"여기 내 손에 들린 장부는 황실 재무부의 공식 장부가 아니다! 바로 저 안에서 세금을 징수하겠다고 날뛰는 바론 드 크루아가, 여러분의 피땀 어린 은화를 갈취해 작성한 ‘사적 뇌물 장부’다!"


골목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크루아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발코니로 뛰쳐나왔다.


"이, 이놈이 무슨 미친 소리를! 당장 입을 막아라!"


하지만 도현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장부의 첫 페이지를 펼치고 정확한 날짜와 이름, 그리고 수치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4월 14일, 동부 골목의 제빵업자 한스 씨! 밀가루 관세라는 명목으로 은화 12닢을 징수당했지? 하지만 제국 세법상 밀가루 관세율은 3%에 불과해 은화 2닢만 내면 되었다! 나머지 은화 10닢은 어디로 갔는가?"


군중 속에서 한 노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4월 18일, 서부 포구의 Butcher 피터 씨! 가축 도축세로 은화 20닢을 빼앗겼지? 이 장부에 기록된 진짜 황실 세입은 은화 5닢뿐이다! 나머지 은화 15닢은 어디로 갔는가?"


골목 곳곳에서 분노 섞인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지난 3년간 바론 드 크루아가 이 빈민가와 상인들에게서 불법으로 초과 징수한 세금의 총액은 무려 은화 만 이천 닢에 달한다! 그리고 그 은화들은 황실 금고가 아닌, 크루아의 개인 주머니와 그가 동부 구역에 새로 매입한 호화로운 사설 villa의 대금으로 지불되었다! 여러분이 굶주리며 자식들에게 빵 한 조각 먹이지 못할 때, 저 자는 여러분의 피땀으로 대리석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뭐라구……?"

"내 은화 15닢이 저 징세관 놈의 목욕탕 대금이 되었다고?"


분노의 불꽃이 빗속에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군중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붉은색 적개심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때, 남부 포구의 하역 노동 조합장 루카스가 억센 팔뚝으로 쇠파이프를 땅에 쿵 내리치며 군중 선봉으로 나섰다. 그의 뒤로 단단한 체구의 하역 인부 50여 명이 몽둥이를 들고 골목을 메웠다. 도현의 정보원인 이모부 유필두 역시 성난 얼굴로 군중의 흐름에 가세했다.


"바론 드 크루아……! 우리 가난한 놈들의 피를 빨아 처먹고 호의호식했단 말이냐!"


루카스의 사나운 포효에 군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크루아의 경비병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 이 천한 폭민 놈들이 미쳤나! 경비병들, 당장 무기를 들고 진압해라!"


크루아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지만, 100명이 넘는 성난 군중과 쇠파이프를 든 하역 인부들의 압도적인 머릿수 앞에서는 경비병들조차 공포에 질려 무기를 떨어뜨리고 뒤로 물러섰다.


*퍽! 콰당!*


누군가 던진 깨진 기와 조각이 크루아의 이마를 정확히 맞췄다. 그의 화려한 이마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이어 사방에서 오물과 돌멩이, 썩은 채소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살려줘! 병사들, 나를 호위해라! 탈출해야 한다!"


크루아는 강제 압류 집행장을 바닥에 팽개치고, 머리를 감싼 채 쥐새끼처럼 비명을 지르며 골목 아래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분노한 군중들이 그들의 뒤를 쫓으며 오물을 투척했고, 빈민가 골목은 거대한 폭동의 도가니로 변했다.


도현은 발코니 난간을 잡고 그 광경을 차분하게 내려다보았다. 칼과 마력은 없었지만, 숫자의 정확함과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분노를 엮어낸 지략은 제국의 공식 징세관을 단숨에 파멸시킬 만큼 강력한 무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을 느낄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성난 군중들이 크루아 일당을 쫓아 골목 저편으로 멀어지던 그 순간, 빗속을 뚫고 웅장하고 무거운 강철 판금 갑옷의 마찰음이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철컥.*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묵직한 발걸음 소리에 광장의 공기가 일시에 얼어붙었다. 폭동을 일으키던 군중들이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 양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둠과 장대비가 내리는 골목 끝에서, 황실의 상징인 금빛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검은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 최고의 정예 무력 집단, 황실 친위대였다.


그리고 그 기사단의 선두에서, 칠흑처럼 어두운 군마를 탄 사내가 천천히 도현의 부서진 셋방 앞마당으로 진입했다.


황실 친위대장 울리히.


그는 빗속에서도 한 치의 흐름 없이 단정한 판금 투구 아래로, 얼음처럼 차갑고 냉혹한 눈빛을 번뜩이며 2층 발코니의 도현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울리히가 허리에 찬 명검 솔라리스의 금빛 자루에 손을 얹자, 빈민가 골목 전체가 숨이 막힐 듯한 압도적인 살기로 가득 찼다.


도현은 난간을 쥔 손가락에 힘을 주며, 자신을 향한 친위대장의 차가운 눈빛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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