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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토론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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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대강당의 웅장한 문이 열리며 수백 명의 귀족 배심원단과 줄리안의 오만한 시선이 도현을 향해 쏟아졌다.


제국 학술원의 대강당은 그 규모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높은 아치형 천장 아래로 쏟아지는 오색 stained glass의 빛줄기는 바닥의 대리석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고, 계단식으로 배치된 좌석에는 수도 에스펜의 내로라하는 고위 귀족들과 학자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오만하고 차가웠으며, 단상 아래에 서 있는 한 청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채도현. 창백한 안색에 잉크 얼룩이 밴 회색 학자 로브를 입은 마른 청년. 그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남부 무역의 지배자 하은교가 선물한 청옥 약혼 반지가 푸른빛을 은은하게 발하고 있었다. 그의 품에는 조부의 유산인 낡은 목제 기계식 계산기가 묵직하게 안겨 있었다.


“보라고, 공작가의 치맛자락을 잡고 신분 상승을 노리는 가짜 사위 놈이군.”

“유약한 평민 학자 서생 주제에 감히 제국의 세법을 논하겠다니, 오늘 지적으로 완전히 매장당할 준비나 하는 게 좋을 게야.”


귀족 자제들의 조롱 섞인 귓속말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현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차분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를 따르는 후배 로이는 수만 장의 세금 장부 사본을 품에 안은 채 긴장으로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단상 위에는 줄리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빳빳하게 다려진 최고급 백색 학자복을 입은 그는 금발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채, 승리자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도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책상 위에는 어젯밤 레오폴드 부원장의 스파이를 통해 훔쳐낸, 도현의 서재에 놓여 있던 ‘이중 장부’가 당당하게 놓여 있었다. 줄리안은 그것이 도현의 진짜 비밀 분석 장부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늦었군, 채도현.”

줄리안이 거만하게 턱을 치켜세웠다.

“공작가의 개가 되어 구걸한 청옥 반지가 제법 무거웠던 모양이지?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네놈의 그 천박한 ‘감세론’이 제국을 망치는 궤변에 불과함을 똑똑히 증명해 주마.”


강당 중앙의 상급 귀족 배심원단석에는 부패한 부원장 레오폴드가 심사위원장 자리에 앉아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이미 줄리안의 가문으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고 도현을 퇴학시킬 명분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양측은 단상으로 올라서라.”

레오폴드가 엄숙한 목소리로 선포했다.

“이번 토론의 주제는 ‘황실의 세무 정책과 민중의 소비력 상관관계’이다. 먼저 고전 세법의 정통 후계자이자 학술원의 수석 후보인 줄리안이 발표를 시작하라.”


줄리안이 기고만장한 발걸음으로 거대한 칠판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품속에서 도현에게서 훔쳐낸 장부의 수치들을 꺼내 들고 칠판에 복잡한 세법 수식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제국의 재정 안정을 위해서는 소비세와 소금세를 포함한 간접세를 극대화해야 합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기 황실 세무부의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세율을 200% 인상할 때 세입은 정확히 세 배로 증가하는 선형적 비례 관계를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도현의 서재에서…… 아니, 제 학문적 탐구로 도출해낸 제국 재정의 황금 공식입니다!”


줄리안은 칠판에 소비 승수(Consumption Multiplier) 공식을 적어 내려갔다.


$$Y = \frac{1}{1 - c(1 - t)} (C_0 + I + G)$$


그는 훔친 장부에 기재된 수치들을 대입하여, 세율 $t$가 상승하더라도 총수요 $Y$의 감소 폭은 극히 미미하며 오히려 정부 지출 $G$의 증가로 인해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논리를 당당하게 펼쳤다. 귀족 배심원들은 줄리안의 정교해 보이는 수식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 어린 수군거림을 보냈다. 레오폴드 부원장 역시 만족스러운 듯 수염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도현은 그 모습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초인적 감사안’이 칠판에 적힌 줄리안의 수식 위를 훑었다. 줄리안이 훔쳐 간 장부는 도현이 일부러 수치적 덫을 놓아둔 ‘가짜 장부’였다.


줄리안이 공식의 대입을 마무리지으려던 그 순간, 계산의 결과값이 비정상적인 수치로 꼬이기 시작했다. 분모의 한계값 계산이 분자의 가상 인플레이션 누적치와 맞물리며, 최종 소비 승수가 마이너스(-) 무한대로 수렴해버리는 기하학적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어……? 잠깐, 이 분모의 값이 어째서…….”

줄리안의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분필이 칠판 위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황급히 자신이 훔친 가짜 장부를 뒤적였으나, 숫자들이 서로 맞물리지 않고 거대한 모순의 늪으로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식은땀이 그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 도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고요했으나, 대강당의 모든 소음을 일시에 잠재울 만큼 명확한 힘이 실려 있었다.


“줄리안, 계산이 막히는 모양이군. 당연한 결과다. 네가 사용한 공식 중 소비 승수의 분모 값 계산에 아주 fatal한 오류가 존재하기 때문이지.”


“오류라니? 그럴 리가 없다! 이 데이터는 명백히……!”

줄리안이 차마 도현의 서재에서 훔쳤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를 향해 도현이 한 걸음 다가섰다.


“너는 세율 $t$가 200% 인상될 때, 민중의 한계 소비 성향 $c$가 고정된 상수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탁상공론에 불과하지. 세율이 인상되면 disposable income, 즉 가처분 소득이 급감하며, 특히 생필품인 소금과 빵의 가격 폭등으로 인해 민중의 한계 소비 성향은 급격한 비선형적 붕괴를 겪게 된다. 네가 칠판에 적은 수식은 현실의 시장 작동 원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쓰레기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


“궤변이다! 그렇다면 네놈에게는 현실을 증명할 진짜 데이터가 있단 말이냐?”

줄리안이 악에 바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도현은 말없이 로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로이가 조심스럽게 품속에서 붉은 가죽으로 제본된 두꺼운 장부 한 권을 꺼내 도현에게 건넸다. 장부의 표면에는 수도 빈민가를 관할하는 ‘성 미카엘 수녀회’의 공식 은빛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것은 성 미카엘 수녀회의 이사벨라 수녀님을 통해 확보한, 지난 3년간 수도 에스펜 빈민가 3만 가구의 실제 인구 이동 및 일일 생필품 소비 실태 통계 장부다.”


대강당이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성 미카엘 수녀회의 공신력은 제국 황실조차 함부로 부정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이었다.


도현은 품속에서 목제 기계식 계산기를 꺼내 단상 위에 올려놓았다.

*타르르릉, 탁, 탁, 타닥.*

정교하게 맞물린 수십 개의 목제 태엽과 톱니바퀴들이 기분 좋은 마찰음을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도현은 계산기의 건반을 두드리며 칠판 위에 새로운 수치들을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인플레이션 시뮬레이션’ 회로가 실시간으로 수만 명의 인구 데이터를 3차원 그래프로 도식화해 내고 있었다.


“보아라. 황실 재무부가 소금 세율을 200% 인상했을 때, 수도 30만 인구 중 최하층 40%에 해당하는 12만 명의 disposable income은 사실상 제로 이하로 추락했다. 소금은 대체재가 없는 비탄력적 재화다. 결국 이들은 소금을 구매하기 위해, 준탄력적 재화인 ‘빵’의 소비를 정확히 40% 감축했다.”


도현의 손가락이 계산기의 레버를 부드럽게 당겼다. 톱니바퀴가 멈추며 최종 연산 수치가 칠판 위에 황금빛 분필로 선명하게 적혔다.


“빵 소비가 40% 감소하자, 수도 외곽의 제빵업자들과 곡물 상인들의 거래량이 폭락했다. 시장의 통화 유통 속도 $V$는 기존 4.2에서 1.8로 마비되었지. 결과적으로 황실은 소금세로 은화 5만 닢을 더 거두려다, 전체 상거래 마비로 인해 거래세와 관세에서 은화 7만 2천 닢의 손실을 보았다. 즉, 가혹한 징세 정책은 황실의 재정을 채우기는커녕, 제국 경제의 숨통을 끊고 전체 세수를 감소시키는 자멸적인 정책이라는 뜻이다!”


도현의 정교하고 완벽한 수학적 시뮬레이션이 칠판 가득 펼쳐지자, 방청객석의 공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배심원단으로 참여한 영주들과 고위 귀족들은 도현이 제시한 수치적 증거의 완벽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 역시 영지를 경영하는 영주들로서, 과도한 세율 인상이 가져오는 유통 마비의 실태를 본능적으로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 장부는 위조된 것이다! 평민 학자 서생 놈이 감히 황실의 정책을 모독하기 위해 가짜 수치를 만들어낸 게 분명하다!”

레오폴드 부원장이 이성을 잃고 단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하지만 대강당 뒷편의 무거운 문이 열리며 기품 있는 보라색 예복을 입은 노신사가 걸어 들어왔다.

학술원 원장 에라스무스였다.


“에라스무스 원장님……!”

레오폴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에라스무스 원장은 도현이 적어 내려간 칠판의 수식들과 성 미카엘 수녀회의 인장을 찬찬히 훑어본 뒤, 도현을 향해 깊은 감탄이 서린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천천히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원장의 박수를 시작으로, 배심원석의 영주들과 학자들이 일제히 기립하여 대강당을 뒤흔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기 시작했다. 완벽한 지적 굴복이자 찬사였다.


“수식은 완벽하고, 데이터는 indisputable하다.”

에라스무스 원장의 엄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국의 조세 정책이 나아가야 할 길을 이토록 정교한 숫자로 증명해낸 학자는 내 평생 처음이네. 부원장 레오폴드, 더 이상의 판결은 무의미하네. 이번 토론의 승자는 학술원의 수습 학자 채도현이네.”


원장은 단상으로 걸어 올라와 도현의 가슴에 학술원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황금빛 ‘수석 연구원’ 배지를 직접 달아주었다. 그리고 가죽으로 된 공식 면허장을 건넸다.


“제국 학술원 헌장에 의거하여, 채도현 수석 연구원에게 학술원 자산 및 연구 도구에 대한 황실의 사법적 압류를 영구히 금지하는 ‘압류 금지 특권’을 부여하노라.”


도현은 가슴에 달린 황금빛 배지와 면허장을 움켜쥐었다.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의 청옥 반지가 그 빛을 받아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가족을 지킬 첫 번째 법적 방패가 마침내 완성된 순간이었다.


“크윽…… 으아아아!”


단상 한편에서 자신의 완벽한 패배와 지적 파멸을 지켜보던 줄리안은, 극도의 Humiliation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붉은 선혈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줄리안은 그대로 대리석 바닥 위로 비참하게 쓰러졌다.


대강당의 소란 속에서, 방청객석 가장 어두운 구석의 발코니에 앉아 있던 한 아름다운 여인이 우아하게 깃털 부채를 접었다. 백지아의 최측근 정보 요원 엘라였다.


엘라는 도현의 차가운 미소를 눈에 담으며, 품속에서 깃털 펜을 꺼내 밀랍 서신에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백지아 아가씨께. 채도현은 진짜 괴물입니다. 무력도, 마력도 없이 오직 숫자의 힘만으로 제국의 세무 명가를 무너뜨렸습니다. 당장 그를 확보해야 합니다.’


도현은 쓰러진 줄리안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뇌력을 과도하게 사용해 밀려오는 편두통을 억눌렀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지만, 그의 입가에는 서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첫 번째 사냥이 끝났다. 하지만 도현은 알고 있었다. 패배한 줄리안의 가문이 자신을 파멸시키기 위해 더 가혹한 세금 징수관 크루아를 빈민가의 집으로 보낼 것임을. 새로운 폭풍이 이미 그의 셋방을 향해 불어오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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