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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의 주인과 포구의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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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교가 끼워준 청옥 반지가 왼손 넷 번째 손가락에서 차가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손가락 끝을 타고 흐르는 미세한 마력의 파동. 그것은 남부 무역을 지배하는 하씨 가문 후계자의 공식 약혼자라는 징표이자, 동시에 거대한 권력의 표적이 되었다는 서늘한 경고였다.


‘하태성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벽란루 최상층 집무실을 나온 채도현은 어두운 복도를 걸으며 품속의 가죽 장부를 다잡았다.


30만 골드에 달하는 선단 방화 및 횡령 사건의 전말을 하은교에게 넘겼고, 차화거래를 통해 가문의 유동성 위기까지 해결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하태성은 자신의 목줄을 죄어오는 이 학자 놈을 제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터였다. 무력이 전혀 없는 도현으로서는 적의 칼날이 들어오기 전에 판을 먼저 장악해야 했다.


도현이 노리는 다음 패는 하태성의 생명줄이자 남부 무역의 심장부, 바로 ‘남부 포구’였다.


“도현 나리, 정말 그 녀석을 만나려는 거요? 본가의 적자들에게 개 취급을 받으며 쓰레기나 치우는 반쪽짜리 귀족 놈인데.”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발타자르가 굵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현의 지략에 완전히 굴복해 사설 보디가드가 된 흑수파의 두목은 여전히 의구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반쪽짜리 서자이기에 쓸모가 있는 겁니다, 발타자르.”


도현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가장 굶주린 개가 뼈다귀를 던져주었을 때 가장 사납게 무는 법이니까요.”


도현이 찾아간 곳은 남부 포구의 가장 외진 구석, 썩은 생선 냄새와 소금기가 진동하는 쓰레기 하역장이었다. 그곳의 허름한 판자 사무실 안에서 한 청년이 낡은 장부를 신경질적으로 던지고 있었다.


하씨 가문의 방계 서자, 하진우.


햇볕에 검게 탄 다부진 체격에 거친 가죽 옷을 걸친 그는 가문의 성을 가졌음에도 적자들에게 밀려 포구의 온갖 오물과 쓰레기 처리만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세상을 향한 깊은 독기와 야심이 서려 있었다.


“공작가의 가짜 사위가 이런 썩은 구석엔 무슨 일이지?”


하진우가 삐딱하게 앉아 도현을 쏘아보았다. 비웃음이 섞인 말투였지만, 그의 시선은 도현의 손가락에서 빛나는 청옥 반지에 고정되어 있었다.


도현은 말없이 품속에서 두꺼운 양가죽 서류 뭉치를 꺼내 그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남부 물류 혁신 및 독점 노선 계획서.’


진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게 뭐지?”


“당신을 이 포구의 쓰레기 청소부에서 남부 물류의 총책으로 만들어줄 열쇠입니다.”


도현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기이한 무게감이 있었다.


“하태성이 장악하고 있는 남부 포구의 물류 통제권을 빼앗아 올 겁니다. 하태성은 밀수와 횡령으로 가문의 피를 빨아먹고 있지만, 정작 이 포구를 실제로 움직이는 하역 노동자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지요. 우리는 그 틈새를 공략할 겁니다.”


하진우는 계획서의 첫 장을 넘겼다. 도현이 복식부기 기법과 유체역학적 적재량 계산을 접목해 작성한 물류 최적화 수치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단순한 헛소리가 아니었다. 이 계획서대로만 흘러간다면 포구의 물류 회전율은 세 배 이상 치솟을 터였다.


“미친 소리 같지만…… 재미있군.”


진우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포구의 하역 노동자들을 설득하는 건 다른 문제야. 그놈들은 본가의 명령도 귓등으로 듣는 짐승 같은 놈들이거든. 특히 하역 노동 조합장인 루카스라는 놈은 칼침 몇 대로는 굴복하지 않아.”


“그래서 직접 만나러 갈 겁니다.”


도현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


남부 포구의 어두운 선술집 ‘우는 갈매기’ 안은 땀 냄새와 싸구려 에일 맥주 향으로 가득했다. 험악한 인상의 하역 인부들이 가득한 그곳의 가장 깊은 탁자에 거구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루카스.


부러진 코와 단단한 팔뚝, 온몸에 가득한 거친 흉터들이 그가 포구의 밑바닥에서 다져온 세월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가 이끄는 남부 포구 하역 노동 조합은 황실의 과도한 통행세와 가문의 임금 체불로 폭동 직전의 상태였다.


쾅!


도현과 하진우가 탁자 앞으로 다가서자, 루카스는 마시던 맥주잔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거품이 탁자 위로 튀었다.


“공작가의 가짜 사위 놈이 서생 티를 팍팍 풍기며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군.”


루카스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주변의 인부들이 일제히 의자를 뒤로 밀며 몽둥이와 하역용 갈고리를 쥐었다. 살벌한 기류가 순식간에 선술집을 지배했다.


“여기서 네놈의 그 창백한 목을 꺾어 바다에 던져버리면, 황실의 그 빌어먹을 세금 독촉장도 같이 사라지려나?”


“루카스 조합장님.”


도현은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몽둥이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품속의 낡은 가죽 장부를 꺼냈다.


“제모(이모)의 남편이자 제 이모부이신 유필두 님의 소개로 왔습니다. 그분 역시 이 포구에서 평생을 바친 하역 인부이시지요.”


유필두라는 이름이 나오자, 루카스의 눈매가 미세하게 떨렸다. 유필두는 이 포구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가장 신망받는 고참이자 루카스의 옛 스승이었다. 도현은 이모부로부터 하태성의 밀수선 입항 일정과 노동자들의 내부 불만 수치를 이미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필두 형님의 조카라고?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먹물 냄새 풍기며 우리를 훈계하러 왔나?”


“훈계가 아니라, 당신들이 받아야 할 권리를 돌려주러 왔습니다.”


도현이 장부를 펼쳤다. 그의 ‘초인적 감사안’이 활성화되며 장부 속의 숫자들이 뇌내에서 정교한 대차대조표로 정렬되었다.


“이것은 제가 하씨 가문의 본가 감사실에서 확보한 하태성의 사설 급여 대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들이 실제로 수령한 임금 영수증이지요.”


도현은 손가락으로 두 장부의 수치를 대조해 보였다.


“하태성은 제국 세법의 ‘임시 고용세 공제 조항’을 악용하여, 당신들의 임금에서 매달 30%를 세금 명목으로 원천 징수했습니다. 하지만 황실 세무부에 실제로 납부된 금액은 제로였습니다. 그 30%의 돈, 즉 은화 수만 닢에 달하는 금액은 전부 하태성의 개인 비밀 계좌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선술집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인부들의 얼굴이 경악과 분노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땀 흘려 번 돈을 그 귀족 놈이 훔쳐 갔다고?”


루카스의 거구에서 살기 어린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도현은 ‘군중 심리 통제술’을 발휘하여, 그들의 분노가 단순한 폭력으로 흩어지지 않고 하태성을 향한 조직적인 저항으로 모이도록 목소리의 톤을 조절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지난 3년간 하태성이라는 도둑놈의 배를 불리기 위해 굶주려왔던 겁니다. 하지만 여기 해결책이 있습니다.”


도현은 직접 기초한 ‘남부 하역 노동자 권리 보장 및 세금 공제 계약서’를 루카스의 앞에 밀어 넣었다.


“하진우 님이 가문 방계의 권한으로 이 노동 조합에 포구의 ‘독점 하역권’을 법적으로 부여할 것입니다. 하태성의 유령 상사가 아닌, 당신들의 조합이 직접 물류를 통제하는 겁니다. 그리고 제 물류 혁신 계획서에 따라 불필요한 중간 수수료를 제거하면, 당신들의 일당은 즉시 20% 인상될 것입니다.”


하진우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가문의 인장이 찍힌 공식 계약서에 서명하며 묵직하게 말했다.


“서자이지만 나도 하씨 가문의 핏줄이다. 내 이름과 명예를 걸고 이 계약을 보증하지.”


도현은 가방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짤랑이는 맑은 은화 소리가 선술집에 울려 퍼졌다.


“이것은 발타자르의 자금에서 인출한 은화 50닢입니다. 계약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선지급금이자, 오늘 밤 당신들의 굶주린 가족들을 위한 빵값입니다.”


은화 50닢. 그리고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완벽한 법적 계약서.


루카스는 도현의 창백하지만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유약한 학자는 힘이 없었지만, 그가 쥔 펜 끝에는 자신들을 수탈에서 구원할 압도적인 논리와 신용이 있었다.


“……좋아.”


루카스는 잉크가 묻은 거친 엄지손가락을 들어 계약서 하단에 꾹 눌렀다. 지장이 선명하게 찍혔다.


“필두 형님의 조카를 믿어보지. 오늘부터 우리 남부 포구 하역 노동 조합은 하태성의 배를 채우는 하역을 전면 거부한다. 대신, 하진우 님의 물류를 책임지겠다.”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변의 인부들이 일제히 무기를 거두고 도현을 향해 경외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하나 더 알려주지.”


루카스가 도현에게 바짝 다가와 나직하게 속삭였다.


“하태성 그놈, 본가의 눈을 피해 매주 목요일 밤마다 지도에도 없는 절벽 사이 포구에서 특수한 광석을 밀수하고 있어. 우리는 그걸 ‘유령 부두’라고 부르지. 이번 목요일에도 대규모 밀수선이 들어올 예정이다.”


유령 부두의 실제 위치와 밀수 일정.


도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하태성의 숨통을 끊을 마지막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남부 포구는 전례 없는 혼란에 휩싸였다.


하태성의 유령 상사 소속 밀수 화물선이 포구에 정박했으나, 루카스가 이끄는 수백 명의 하역 노동자들이 일제히 하역을 거부하며 포구 전체를 스크럼을 짜고 봉쇄해 버린 것이다.


“이 빌어먹을 천민 놈들이 미쳤나! 당장 화물을 내리지 못해!”


하태성의 사설 관리인들이 채찍을 휘두르며 위협했지만, 노동자들은 쇠파이프와 갈고리를 든 채 단호하게 맞섰다. 하진우가 가문의 방계 권한으로 발행한 ‘포구 통행 보증패’를 치켜들자, 황실 세관원들조차 법적 명분에 막혀 섣불리 개입하지 못했다. 포구의 물류가 완벽하게 마비되는 순간이었다.


그 시각, 수도 중심가의 화려한 하태성 저택.


“뭐라 하느냐? 포구가 봉쇄되었다고?”


하태성은 보고를 전하는 부하의 뺨을 거칠게 후려쳤다. 그의 신경질적인 얼굴이 분노로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 창백한 학자 서생 놈이 감히 내 생명줄을 건드려? 하진우 그 서자 놈과 천민들을 충동질해서 나를 파멸시키려 해?”


태성은 부르르 떨며 책상 위의 유령 부두 밀수 장부를 움켜쥐었다. 이번 목요일에 들어올 루베르 원석 밀수가 실패한다면, 그는 가문에서 완전히 매장당할 터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시릴을 불러라.”


태성의 목소리에 지독한 살기가 서렸다.


어둠 속에서 쥐새끼 같은 인상의 정보 브로커 시릴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예, 태성 나리.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 잘난 가짜 사위 놈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놓아야겠다. 놈이 수도 변두리 빈민가에 병든 노모와 어린 여동생을 숨겨두었지?”


하태성의 입꼬리가 잔인하게 올라갔다.


“당장 살수들을 보내라. 그 학자 놈의 여동생, 채유나를 납치해라. 놈이 내 발아래 무릎 꿇고 울부짖으며 진짜 장부를 가져올 때까지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 보내줄 테니.”


어두운 저택의 방 안, 하태성의 사악한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도현의 가족을 향한 검은 음모의 덫이 소리 없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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