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화거래와 은화의 가치
쾅! 쿠구구궁!
마침내 벽란루 지하 밀실의 육중한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뜯겨 나갔다. 부서진 잔해 먼지 사이로 하태성이 보낸 험악한 밀수 조직원들이 칼날을 번뜩이며 난입했다.
“쥐새끼들이 여기 있었군. 장부와 함께 목을 베어라!”
로이는 공포에 질려 도현의 뒤로 숨었고, 무력이 전혀 없는 도현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흘렀다. 칼날이 도현의 심장을 향해 쇄도하려던 찰나, 밀실 벽면의 그림자가 요동쳤다.
“어이, 거기 허접한 칼잡이 놈들. 내 고용주한테 손끝 하나라도 대면 사지를 찢어놓겠다고 경고했을 텐데?”
지옥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거구의 사내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도현의 협박과 회유에 굴복해 사설 보디가드가 된 뒷골목 ‘흑수파’의 두목, 발타자르였다.
발타자르는 험악한 흉터가 가득한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거대한 철퇴 몽둥이를 휘둘렀다. 단 한 번의 파공음과 함께 선두에 서 있던 자객 두 명의 무기가 박살 나며 벽면으로 처박혔다. 흑수파 조직원들이 뒤이어 난입해 하태성의 부하들을 순식간에 제압하기 시작했다.
“도현 나리, 늦지 않았지? 이 빌어먹을 쥐새끼들은 내가 깔끔하게 청소할 테니 어서 아가씨에게 가보쇼.”
발타자르가 씩 웃으며 길을 열었다. 도현은 품속에 ‘30만 골드 횡령 증거 보고서’를 단단히 움켜쥔 채, 로이와 함께 밀실을 빠져나와 벽란루 최상층으로 향했다.
벽란루 3층, 은은한 침향 냄새가 감도는 화려한 집무실에서 하은교는 초조하게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도현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녀의 붉은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현? 무사했군. 장부는 어떻게 되었지? 설마 하태성이 보낸 자들에게 빼앗긴 건 아니겠지?”
도현은 대답 대신 품속에서 차변과 대변이 정교하게 맞물린 복식부기 대차대조표 보고서를 꺼내 그녀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하태성이 남부 해적 카를로와 내통하여 선단을 고의로 방화 침몰시켰습니다. 그리고 공식 선적 명세서에서 누락시킨 ‘루베르 원석’을 밀수해 총 30만 골드의 자금을 유령 상사 ‘골드 오션’을 통해 세탁했습니다. 여기, 그 자금의 최종 종착지가 하태성의 비밀 계좌로 흘러 들어간 완벽한 대차대조표 물증입니다.”
하은교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도도하던 그녀의 고양이상 얼굴이 분노로 차갑게 굳어졌다.
“태성 사촌 오빠가…… 감히 가문의 선단을 불태우고 나를 실각시키려 해적과 결탁했다고? 30만 골드나 되는 가문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그녀는 부채를 꽉 쥐어 부러뜨릴 듯 격노했다. 당장이라도 가문 기사단을 움직여 하태성의 목을 베고 싶어 했지만, 이내 은교는 깊은 한숨을 쉬며 테이블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당장 이 사실을 가문 장로회에 폭로할 수가 없어. 지금 하씨 가문은 최악의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있으니까. 황실의 관세 압박으로 남부 상선들이 묶였고, 주거래 은행인 에스펜 상업은행마저 황실의 압박을 받아 대출금 조기 상환을 독촉하고 있어. 당장 장 장로회는 내게 유동성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후계자 직위를 내놓으라고 목을 죄어오는 상황이야. 하태성을 치려 해도, 당장 가문을 지탱할 실물 은화가 부족해.”
사면초가에 빠진 여왕의 모습이었다. 도현은 그녀의 앞에 서서 차분하게 ‘목제 기계식 계산기’를 꺼냈다. 타르르릉, 정교한 톱니바퀴 회전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은교 아가씨. 은퇴한 전대 재무상 맥스웰 스승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신 진실이 있습니다. ‘제국 황실은 썩어가고 있으며, 자신들의 재정 적자를 숨기기 위해 은밀한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말입니다.”
“사기극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에스펜 데나리온 은화’의 공식 가치는 100센트입니다. 하지만 황실 조폐국은 최근 은화 주조 시 은의 함량을 교묘히 낮추었습니다. 제 ‘경제적 위험 감지’안으로 분석한 결과, 지금 시중 은화의 실제 가치는 60센트 수준으로 폭락해 있습니다. 즉, 황실이 화폐 신용을 조작해 백성들의 재산을 수탈하고 있는 겁니다.”
도현의 눈동자가 깊고 푸른 지혜의 빛으로 빛났다.
“반면, 국경 너머 자유 도시 연합의 은화는 여전히 100%의 고순도 은 함량을 유지하고 있지요. 두 화폐 간에는 무려 15%가 넘는 실제 가치의 편차가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공략할 틈새, 즉 ‘차화거래(Arbitrage)’입니다.”
도현은 기계식 계산기의 건반을 두드리며 허공에 금빛 수식 그래프를 그려 보였다.
“수도 에스펜에서 가치가 저평가된 타국 은화를 싼값에 매입합니다. 그리고 하진우의 포구 통행 보증패와 황실의 세관 감시망이 미치지 않는 비밀 우회로를 이용해 관세를 회피한 뒤, 남부 포구를 통해 해외로 송출합니다. 그곳에서 고순도 은화로 재환전하여 피에르의 환전소를 통해 수도로 다시 들여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발타자르의 사설 호위가 물리적 안전을 보장할 것입니다.”
하은교는 도현이 제시한 정교한 금융 설계안을 바라보며 입술을 벌렸다. 칼과 마법이 아닌, 오직 숫자의 편차와 법의 틈새만을 이용해 아무런 위험 없이 돈을 창조해 내는 연금술 같은 지략이었다.
“이게 정말 가능하다는 건가? 앉은 자리에서 무위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가씨의 개인 비자금 은화 10만 닢을 제게 투자해 주십시오. 일주일 안에 가문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할 5만 골드의 순수익을 장부상에 꽂아 넣겠습니다.”
하은교는 전율했다. 그녀는 도현의 창백하지만 확신에 찬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단순한 방패막이 꼭두각시가 아니었다. 가문을 파멸에서 구하고 자신을 왕좌에 앉혀줄 유일한 지배자였다.
“조아. 내 개인 비자금 10만 골드를 전부 너에게 걸겠어. 도현,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피에르의 환전소와 하진우의 우회 물류망, 그리고 발타자르의 철저한 사설 호위 아래 도현의 차화거래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되었다. 황실 세관원들은 얕은 여울로 은밀히 빠져나가는 은화 상자들을 단 하나도 감지하지 못했다.
일주일 뒤, 에스펜 상업은행의 하씨 가문 금고에 정확히 은화 5만 닢이 추가된 15만 골드의 실물 자산이 입금되었다. 가문의 유동성 위기가 단숨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보고서를 확인한 하은교는 몸을 부르르 떨며 도현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눈빛에는 단순한 경탄을 넘어선, 깊은 집착과 독점욕이 서려 있었다.
“믿을 수 없어…… 정말로 단 일주일 만에 5만 골드를 만들어내다니. 도현, 너는 대체 어떤 존재지?”
은교는 떨리는 손으로 도현의 왼손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에서 빼낸, 푸른 청옥이 박힌 하씨 가문의 공식 약혼 반지를 도현의 네 번째 손가락에 거칠게 끼워 넣었다.
“이제 넌 영원히 내 남편이야. 절대로 다른 가문의 기집애들에게 널 빼앗기지 않겠어.”
도현의 손가락에서 청옥 반지가 푸른 빛을 발하는 순간, 도현의 머릿속에 새로운 위험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