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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을 끊는 다자간 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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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제철소, ‘검은 용광로’가 전면 봉쇄되었습니다!”


연무장을 찢고 들어온 전령의 비명에, 타오르던 붉은 노염마저 일시에 얼어붙는 듯했다.


기사단장 강철의 한스의 단단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연무장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의 기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져 나갔다. 북부의 심장이라 불리는 검은 용광로가 닫혔다는 것은, 기사단의 모든 갑옷과 무기를 제련할 원자재가 끊겼음을 의미했다.


“숙부님이 결국…… 미쳐 날뛰는군.”


설수련이 대검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이가 갈리는 소리를 냈다. 대검의 검날이 석조 바닥을 깊게 파고들며 날카로운 마찰음을 냈다. 그녀의 은빛 단발머리가 북풍에 거칠게 휘날렸다.


그때, 연무장 입구에서 비단 코트를 걸친 노신사와 함께 설진태 파벌의 장로들이 오만하게 걸어 들어왔다. 그들의 입가에는 승자의 비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수련 아가씨, 그리고 한스 단장.”


설진태의 최측근인 가문의 늙은 재무 장로가 장부를 툭툭 치며 앞으로 나섰다.


“횡령이니 뭐니 하며 가문의 원로를 모함하더니, 정작 제철소가 멈추자 기사단이 당장 내일 아침 쓸 선철조각 하나 없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마침 서부의 연금술 길드(민씨 가문)에서 독촉장이 도착했더군요. 이전 기사단의 마력 회복용 약재 대금으로 청구된 은화 5만 닢의 만기가 바로 내일 아침입니다.”


장로가 도현을 비열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이 가난한 학자 놈의 입바른 소리에 놀아나 원로를 쫓아내려 한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당장 은화 5만 닢을 상환하지 못하면, 연금술 길드는 기사단의 모든 약재 공급을 영구 중단하고 사법부에 채무 불이행으로 기소할 것입니다. 기사단이 파산하면 수련 아가씨의 후계자 자격도 그 즉시 박탈입니다.”


“은화 5만 닢이라니! 그 대금은 분명 다음 달 결제 예정이었을 텐데!”


한스가 거대한 판금 장갑을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설진태 원로께서 연금술 길드 측에 압력을 넣어 만기를 앞당기신 모양입니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기사단의 금고는 텅 비어 있고, 제철소마저 봉쇄되어 팔아치울 선철도 없습니다. 다른 광산이라도 담보로 잡혀 사채를 빌리시겠습니까?”


장로들의 비아냥거림에 설수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다급히 도현을 바라보았다.


‘다른 광산을 담보로 잡혀서라도 급전을…….’


수련이 입을 열려 하자, 도현이 그녀의 옷자락을 가만히 잡아당겼다. 도현은 목덜미의 찰과상에서 흐르는 피를 찢어진 로브 소매로 닦아내며,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수련 아가씨. 지금 다른 광산을 담보로 사채를 빌리는 순간, 그 사채업자 배후에 있는 설진태 원로가 광산 소유권마저 합법적으로 강탈해 갈 것입니다. 적들이 파놓은 가장 뻔한 덫입니다.”


“하지만 도현! 당장 내일 아침까지 은화 5만 닢을 구하지 못하면 기사단은 끝장이다!”


수련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칼을 쥐고 전장을 지배하던 여기사도, 보이지 않는 숫자의 족쇄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도현은 깊은 호흡을 내쉬었다. 과도한 감사안 사용으로 관자놀이가 깨질 듯이 아파왔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세 가문의 장부들이 입체적인 대차대조표로 정렬되어 회전하고 있었다.


“은화는 필요 없습니다.”


도현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단 1센트의 실물 은화도 쓰지 않고, 내일 아침까지 기사단의 부채 5만 닢을 완벽히 청산하겠습니다.”


“뭐라? 미친 소리를 하는구나!”


재무 장로가 코웃음을 쳤다.


“돈 없이 빚을 갚겠다고? 학자 놈이 머리가 돌았거나 우리를 기만하려 드는군!”


도현은 대꾸하지 않고 연무장의 목제 테이블 위에 세 권의 가죽 장부를 나란히 펼쳤다. 하나는 설씨 가문 기사단의 보급 장부, 또 하나는 하은교에게 받아 둔 남부 하씨 가문의 무역 장부 사본, 그리고 마지막은 서부 민씨 가문 연금술 길드의 약재 유통 장부 사본이었다.


도현은 품속에서 가문의 유산인 ‘목제 기계식 계산기’를 꺼내 들었다.


타르르릉, 타닥, 타다닥!


도현이 상단의 태엽을 부드럽게 감자, 정교한 청동 톱니바퀴들이 기분 좋은 마찰음을 내며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도현의 시야 속에서 세 권의 장부 위에 기록된 수많은 숫자 가닥들이 푸른색과 황금색의 실선이 되어 공중에 솟아올랐다.


“장로님, 그리고 한스 경. 이 숫자의 사슬을 똑똑히 보십시오.”


도현이 기계식 계산기의 건반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첫째, 북부 설씨 가문은 서부 연금술 길드(민씨 가문)에 약재 대금으로 은화 5만 닢의 채무를 지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다. 그게 내일 아침 만기인 빚이지.”


장로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둘째, 서부 연금술 길드는 남부 하씨 가문에 희귀 약초 수입 대금으로 은화 5만 닢의 채무를 지고 있습니다. 이 장부의 기장 내역이 증명하지요.”


도현이 민씨 가문 장부의 특정 행을 가리키자, 붉은색 기하학적 연결선이 하씨 가문의 무역 장부로 이어졌다.


“셋째, 남부 하씨 가문은 북부 설씨 가문에 남부 무역선단의 철판 보강용 정련 선철 구매 대금 및 운하 통행세로 은화 5만 닢의 채무를 지고 있습니다. 여기 하은교 아가씨의 직인이 찍힌 수취 계정 대장이 있습니다.”


세 개의 가문. 세 개의 채무. 그리고 정확히 일치하는 ‘은화 5만 닢’이라는 액수.


도현이 계산기의 마지막 레버를 당기자, 공중에 떠 있던 세 개의 푸른 실선들이 서로의 꼬리를 물며 완벽한 정삼각형의 기하학적 고리를 형성했다.


“이게…… 무슨 뜻이지?”


한스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다자간 채무 상쇄 프로토콜(Multi-lateral Debt Offset Protocol)’입니다.”


도현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


“설씨 가문은 민씨 가문에 돈을 주어야 하고, 민씨 가문은 하씨 가문에 돈을 주어야 하며, 하씨 가문은 다시 설씨 가문에 돈을 주어야 합니다. 결국 이 세 가문 사이에서 5만 닢이라는 실물 은화는 아무런 생산적 가치 없이 그저 뱅글뱅글 돌며 서로의 목을 죄는 사슬로만 작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현이 미리 작성해 둔 삼자 교차 상쇄 합의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실물 은화를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세 가문이 한자리에 모여 장부상으로 서로의 채무를 동시에 소멸시키면 끝나는 일입니다. 설씨 가문이 가질 채권을 민씨 가문으로 양도하고, 민씨 가문은 그 채권으로 하씨 가문의 빚을 탕감하며, 하씨 가문은 설씨 가문에 진 빚을 상쇄하는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세 가문의 채무는 단 1센트의 은화 이동도 없이 장부상에서 ‘제로(0)’로 수렴합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다!”


장로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서로 다른 가문의 채무를 어떻게 마음대로 섞는단 말이냐! 각 가주의 승인과 복잡한 법적 절차가 필요한 일이다. 하씨 가문과 민씨 가문이 미쳤다고 이 유치한 장부 장난에 동조해 줄 것 같으냐?”


“이미 동조하셨습니다.”


도현이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서 빛나는 하씨 가문의 청옥 반지를 가볍게 들어 보였다.


“남부 하씨 가문의 공식 약혼자이자 수석 재무 자문으로서, 저는 하은교 아가씨의 대리 서명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서부 민씨 가문의 민소희 아가씨 역시 가문의 약재 연체 대금으로 골머리를 앓던 중 제 제안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도현이 품속에서 백지아의 정보망을 통해 극비리에 받아 둔 민소희의 친필 서명지와 하은교의 청옥 인장이 찍힌 위임장을 꺼내 놓았다.


완벽한 물증. 완벽한 법리적 설계.


설수련은 도현의 거침없는 지략에 온몸이 짜릿하게 저려오는 전율을 느꼈다. 무력도, 가문의 혈통도 없는 이 마르고 창백한 청년이, 오직 머릿속의 숫자와 장부 몇 장으로 제국의 거대 가문들을 손가락 위에 올려놓고 굴리고 있었다.


“수련 아가씨, 서명하십시오.”


도현이 깃털 펜을 건넸다.


설수련은 주저하지 않고 펜을 받아 삼자 상쇄 계약서 하단에 자신의 가문 문양을 정교하게 서명했다.


스스스슥.


서명이 완료되는 순간, 도현이 계산기의 레버를 되돌렸다. 타르르릉, 소리와 함께 공중에 떠 있던 세 가문의 채무 사슬이 눈 녹듯 사라지며 제로로 수렴했다.


내일 아침 기사단을 파산시키려던 설진태의 거대한 금융적 압박이, 단 한 닢의 은화도 쓰지 않은 채 장부의 잉크 한 방울로 완전히 파쇄된 순간이었다.


“이, 이럴 수가…….”


재무 장로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바라보다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채 뒤걸음질 치며 연무장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연무장에 웅장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기사단장 강철의 한스가 도현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묵직한 판금 갑옷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컥이는 소리를 냈다. 한스는 도현의 눈앞에 멈춰 서더니, 갑자기 자신의 거대한 오른손 주먹을 왼쪽 가슴에 대고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제국 상급 기사가 군주에게만 바치는 가장 장엄한 ‘기사식 경례’였다.


“채도현 경.”


한스의 무거운 목소리가 연무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당신은 칼을 쥐지 않았으나, 우리 기사단 전체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기사단의 명예와 제 검을 걸고 맹세합니다. 현 시간부로 저와 수도 방위 기사단 전원은 당신을 기사단의 유일한 군사이자 주군으로 모시며, 당신의 신변을 목숨 바쳐 지킬 것입니다.”


“주군을 보좌하라!”


연무장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의 기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자신들의 장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철컥, 철컥, 철컥! 수백 자루의 검이 부딪히는 웅장한 소리가 밤하늘을 뒤흔들었다.


설수련은 무릎을 꿇은 기사들의 한복판에서 도현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차가운 푸른 눈동자 속에, 도현이라는 남자의 존재가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깊게 새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같은 시각, 북부 철강 단지 깊은 곳에 위치한 설진태의 집무실.


“돈 없이 빚을 갚았다고?! 그 가난한 학자 서생 놈이 장부 장난질로 기사단을 살려냈단 말이냐!”


설진태가 붉은 포도주 잔을 벽에 던져 산산조각을 냈다. 붉은 액체가 벽을 타고 피처럼 흘러내렸다. 그의 눈동자는 분노와 살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잘난 대가리를 깨부수지 않으면 내 계획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겠군. 당장 연락해라.”


설진태가 어둠 속의 심복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수도에서 가장 잔인하고 소리 없이 목을 베는 자객을 수소문해라. 그 학자 놈의 심장에 구멍을 뚫어버릴 자를 말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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