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눈과 네 개의 가문 반지
장대비가 도현의 창백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젖은 회색 학자 로브가 몸에 무겁게 달라붙었고, 발코니의 부서진 나무 난간을 움켜쥔 손가락 끝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바닥에 넘어져 쓸린 손목의 찰과상에서 배어 나온 핏방울이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도현은 난간을 쥔 손가락에 힘을 주며, 자신을 향한 친위대장의 차가운 눈빛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칠흑 같은 군마 위에 군림하듯 앉아 있는 황실 친위대장 울리히. 그의 검은 판금 갑옷 표면으로 흘러내리는 빗방울조차 그가 뿜어내는 살기 어린 마력 기세에 밀려 미세하게 튕겨 나가고 있었다. 울리히가 고삐를 쥔 손을 천천히 내리며, 다른 한 손을 허리에 찬 명검 솔라리스의 금빛 자루에 얹었다.
"채도현."
울리히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으며, 골목 안의 빗소리를 일시에 집어삼키는 듯한 위압감이 있었다.
"황실의 관리를 모욕하고, 천한 폭민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킨 죄. 이는 제국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명백한 반역 선동이다. 제국 사법법 제17조에 의거하여, 현 시간부로 너를 현장 체포하겠다."
울리히의 손가락이 검자루를 쥐는 순간, 앞마당을 메운 친위기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고쳐 잡았다. 마력이 전혀 없는 순수 학자 서생에 불과한 도현의 심장이 거세게 요동쳤다. 울리히가 검기 한 자락만 날려도 자신과 이 낡은 셋방은 흔적도 없이 먼지가 될 터였다. 극단적인 무력적 압박 속에서 가슴이 턱턱 막혀왔지만, 도현의 뇌내 회로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명확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울리히는 황제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원칙주의자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그가 가장 구속되는 사슬 역시 황실의 법과 절차적 정당성이다.'
도현은 가죽 장갑을 낀 손을 천천히 로브 안쪽으로 가져갔다. 친위기사들의 검날이 미세하게 흔들렸으나, 도현은 흐트러짐 없는 태도로 품속에서 짙은 청색의 옥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
빗물 속에서도 은은하고 깊은 푸른빛을 발하는 신물.
"친위대장 울리히 경. 이 패가 무엇인지 알아보시겠습니까?"
도현의 단호한 목소리가 앞마당에 울려 퍼졌다. 울리히의 얼음 같은 눈동자가 도현의 손에 들린 청옥패를 향했다. 정교하게 조각된 남부 대공가의 문양과 하은교의 마력 각인이 새겨진, 남부 무역의 심장부인 벽란루의 마스터 프리패스이자 하씨 가문의 공식 비호권이 담긴 '벽란루 출입 청옥패'였다.
울리히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하씨 가문의 공식 비호 청옥패…… 네놈이 어째서 그걸 쥐고 있지?"
"저는 남부 하씨 가문의 후계자, 하은교 아가씨의 정식 약혼자입니다. 즉, 저는 하씨 대공가의 직계에 준하는 신분 보장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작가의 가짜 사위가 황실의 법 위에 서려 하는가!"
울리히가 차갑게 호통치며 마력 기세를 한 단계 더 방출했다. 쿵, 하는 무거운 압박감과 함께 도현의 가슴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맛이 감돌았지만, 도현은 기계식 계산기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이성적인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
"법 위에 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국의 법을 수호하려는 것이지요. 울리히 경, 제국 헌법 제3조를 기억하십니까?"
도현은 숨이 막히는 와중에도 또박또박 법조항을 읊었다.
"‘제국 학술원의 수석 연구원과 그 직계 가족은, 황제가 직접 서명한 영장이나 재상회의의 공식 승인이 없는 한, 그 어떤 하급 관료나 군사 집단에 의해서도 강제 구금될 수 없다.’ 또한, ‘대상자가 사대 공작가의 공식 약혼자 신분을 증명하는 신물을 지녔을 경우, 체포를 강행한 자는 가문과의 전면적인 외교적 분쟁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지며 사법부의 탄핵 대상이 된다.’ 명시되어 있습니다."
도현은 바닥에 버려진, 크루아가 도망치며 떨어뜨린 강제 압류 집행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빗물에 젖어 있는 집행장은 관할 구역조차 오기된 부실 영장입니다. 황실의 정당한 영장 없이, 오직 사적인 보복을 위해 출동한 크루아의 비리를 밝힌 것이 어째서 반역 선동입니까? 오히려 불법 징세를 막아 제국 조세법의 정의를 세운 것입니다."
울리히의 시선이 바닥의 집행장으로 향했다. 도현의 말대로 관할 구역이 잘못 적힌 부실 영장이었다. 게다가 도현의 가슴에는 에라스무스 원장이 수여한 황금빛 수석 연구원 배지가 빗속에서 빛나고 있었고, 손에는 하씨 가문의 청옥패가 들려 있었다.
도현은 쐐기를 박듯 경고했다.
"만약 지금 저를 불법 체포하신다면, 이는 제국 헌법 제3조에 대한 정면 위배이며, 남부 하씨 가문 전체에 대한 공식적인 선전포고로 간주될 것입니다. 그 결과로 남부 포구가 봉쇄되고 제국 수도의 관세 세입 40%가 마비된다면, 황제 폐하께서 그 책임을 친위대장 경에게만 물으실지 가슴에 손을 얹고 계산해 보십시오."
고요한 대치 속에서 오직 빗소리만이 골목을 채웠다. 울리히는 솔라리스의 검자루를 쥔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의 머릿속에서도 도현이 던진 정치적, 경제적 후폭풍의 수치들이 복잡하게 계산되고 있었다. 무력이 전혀 없는 이 창백한 학자 청년은, 오직 헌법 조항과 가문의 신물이라는 두 가지 방패를 완벽하게 결합하여 자신을 법적 외통수에 몰아넣고 있었다.
이윽고 울리히가 검자루에서 손을 뗐다.
"……사법적 절차의 결함은 인정하겠다. 하지만 채도현, 폭동을 유도한 네놈의 혀는 황실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다. 영장이 정식으로 재발부되는 날, 다시 찾아오겠다."
울리히가 말머리를 돌렸다. 검은 판금 기사들이 그의 뒤를 따라 빗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들의 묵직한 발소리가 멀어지자, 도현은 참고 있던 숨을 크게 내쉬며 난간을 짚었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손목의 상처가 아려왔지만, 마침내 황실 최강의 무력을 지략으로 꺾어냈다는 서늘한 카타르시스가 전신을 감쌌다.
"오빠……! 괜찮아?"
유나가 방 안에서 뛰쳐나와 도현의 허리를 껴안았다. 침상 위의 유씨 부인도 얕은 숨을 쉬며 안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발타자르와 루카스가 다가와 감탄 섞인 경외의 눈빛으로 도현을 바라보았다.
"선생, 진짜 대단하십니다. 친위대장 울리히를 말 한마디로 돌려보내다니…… 지하 세계에서도 이런 지략은 본 적이 없습니다."
발타자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도현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영장이 재발부되기 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발타자르, 어머니와 유나를 당분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준비를 하십시오."
그때, 골목 입구에서 화려한 푸른 비단 문양이 새겨진 고급 마차가 장대비를 뚫고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마차의 문이 열리며, 붉은 비단 드레스를 입은 하은교가 우아하게 내렸다. 시종들이 그녀의 머리 위로 화려한 양산을 받쳐 들었으나, 그녀의 날카로운 고양이상 눈동자는 오직 2층 발코니의 도현만을 향하고 있었다.
"체포 위기를 아주 우아하게 넘겼더구나, 내 가짜 약혼자님."
은교의 붉은 입술이 매혹적인 호선을 그렸다. 그녀는 마차 문을 열어두고 도현을 향해 손짓했다.
"황실의 사냥개들이 다시 냄새를 맡기 전에 벽란루로 가자. 너와 나, 그리고 우리 가문들이 나누어야 할 아주 무거운 이야기가 있으니까."
도현은 유나와 어머니의 안전을 발타자르에게 다시 한번 당부한 뒤, 하은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 올랐다. 마차 안은 은은한 침향 냄새와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은교는 품속에서 실크 손수건을 꺼내 도현의 쓸린 손목 상처를 손수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그녀의 손길은 다정했으나, 눈빛에는 묘한 집착과 소유욕이 서려 있었다.
마차는 빗길을 달려 수도 남부 대운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화려한 3층 누각, 벽란루에 도착했다. 금빛 조명과 화려한 비단 커튼으로 장식된 벽란루의 최고급 밀실 안으로 들어서자, 은교는 시종들을 물리치고 문을 굳게 잠갔다.
방 중앙의 대리석 테이블 위에는 정교하게 수놓아진 벨벳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도현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은교는 천천히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깊은 푸른빛의 청옥반지 외에도, 묵직한 질감의 강철반지, 신비로운 은빛의 백은반지, 그리고 보랏빛으로 빛나는 자수정반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사대 가문을 상징하는 네 개의 약혼 반지였다.
도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것은……."
"가짜 사위 묵약의 진실이야, 도현."
은교가 테이블 너머로 몸을 기울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우리 네 가문의 가주들이 비밀리에 합의했어. 황실의 의심과 압박을 분산시키기 위해, 가장 약하고 다루기 쉬우며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일회용 방패막이…… 즉, 너를 공동의 '가짜 약혼자'로 세우기로 말이지."
그녀의 손가락이 강철반지와 자수정반지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나뿐만 아니라 북부 철강의 설수련, 동부 정보의 백지아, 서부 연금술의 민소희…… 그 아가씨들도 너를 자신들의 가짜 남편으로 원하고 있어. 넌 이제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네 여인의 공통 약혼자이자,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거대한 도박판의 판돈이 된 거야."
도현은 양손 손가락에 감도는 차가운 기운을 느끼며 네 개의 반지를 바라보았다. 무력도 혈통도 없는 자신을 거대한 네 가문이 공동의 일회용 소모품 방패막이로 쓰려 한다는 충격적인 진실.
하지만 도현의 입가에는 이내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들이 자신을 도구로 쓰려 한다면, 역으로 그들의 장부와 경제적 아킬레스건을 쥐고 흔들어 네 가문 전체를 자신의 발아래 꿇리리라.
도현은 청옥 반지를 천천히 집어 들며 은교의 집착 어린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가짜 사위의 진짜 생존기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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