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과 꼴찌들의 강제 결착
청아제일고등학교의 본관 대강당은 언제나 기이할 정도로 서늘했다. 바닥을 채운 이탈리아산 백대리석은 빛을 흡수하지 않고 날카롭게 반사했고, 천장의 거대한 LED 패널들은 학생들의 머리 위로 차가운 백색광을 쏟아부었다. 매년 신학기 첫날마다 이곳에서 열리는 전체 조회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등급의 제단이었고, 아이들을 숫자로 쪼개어 서열화하는 엄숙한 선포식이었다.
전교 1등인 윤태희는 맨 앞줄 지정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교복은 목 끝까지 단추가 칼같이 채워져 있었고, 남색 재킷에는 한 치의 구김도 허용되지 않았다. 안경 너머로 비치는 그녀의 눈빛은 차갑고 경직되어 있었다. 태희는 오른손에 쥔 검은색 플래너를 꽉 쥐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박힌 굳은살이 펜의 압박을 받아 하얗게 일어났다.
‘버텨야 해.’
태희는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달동네 단칸방에서 만성 천식 발작으로 쌕쌕거리는 남동생 태민이의 호흡 소리가 맴돌았다. 그리고 야간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밤새 거친 손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을 어머니 한정임의 지친 얼굴이 떠올랐다.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재단이 약속한 특별 장학금과 태민이의 병원비 지원금. 그것만이 몰락한 집안에서 태희가 쥐고 있는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수억 원의 사채 빚과 과거 재단 비리 폭로 실패의 그림자 속에서, 그녀가 기어오를 수 있는 유일한 사다리였다.
“정숙.”
단상 위로 걸어 나오는 사내의 구두 굽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대강당 전체에 무겁게 울려 퍼졌다. 학년 주임 남궁진이었다. 빗질 한 올 흐트러짐 없는 가르마와 코끝에 걸친 차가운 무테안경, 그리고 입가에 걸린 기계적인 미소. 그는 학생들을 인간이 아닌 대학 진학률을 높이기 위한 부품으로 보는 차가운 능력주의자였다.
“올해 청아제일고등학교는 교육부 지정 혁신 모델 학교로서, 특별한 학사 규정을 도입하고자 합니다.”
남궁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삼엄했다. 대강당의 스크린에 거대한 학칙 조항이 떠올랐다.
[청아제일고 학칙 제14조 (연대책임제): 공동 학습 조원 중 단 한 명이라도 학기말 고사에서 과락(F, 평균 60점 미만)을 받을 경우, 조원 전원을 퇴학 처분한다.]
순간, 강당 내부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학생들 사이에서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고, 이윽고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져나갔. 연대책임제. 대한민국 상위 1% 엘리트 자사고에서 퇴학을 무기로 학생들을 묶어 도태시키겠다는 기괴한 규칙이었다.
“이 제도는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을 방치하지 않고, 상위권 학생들의 리더십과 연대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혁신적인 조치입니다.”
남궁진이 스크린의 리모컨을 누르자, 다음 화면에 붉은색 글씨로 다섯 명의 이름과 성적이 선명하게 띄워졌다.
[시범 운영 대상자: F조]
- 윤태희 (내신 1등급 / 전교 1등)
- 김현우 (내신 9등급 / 전교 꼴찌)
- 최유진 (예체능반 / 아이돌 연습생)
- 강민우 (종합 성적 하위 10% / 게임 중독)
- 서하은 (종합 성적 최하위 / 선택적 함구증)
강당 전체가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뒤편 좌석에서 나직한 조롱과 비웃음이 섞인 속삭임이 터져 나왔다.
“야, 윤태희 완전 독박 썼네.”
“전교 1등이랑 전교 꼴찌들을 묶어놨어? 남궁 주임 진짜 잔인하다.”
“저 쓰레기들이랑 엮여서 퇴학당하는 거 아냐?”
태희는 등 뒤로 쏟아지는 수백 명의 시선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전교 2등이자 언제나 자신을 꺾고 1등 자리를 차지하려 획책하던 한재준의 가식적인 미소가 멀리서 그녀의 시야에 걸렸다. 재준은 턱을 괴고 흥미진진하다는 듯 태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딴 개같은 법이 어딨어!”
강당 뒷줄에서 거친 고함과 함께 의자가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체육 특기생이자 유도부 출신의 거친 반항아, 김현우였다. 현우는 풀어헤친 교복 셔츠 사이로 다부진 어깨를 드러낸 채 남궁진을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서는 게임 중독자 강민우가 귀찮다는 듯 닌텐도 스위치 화면만 들여다보며 냉소를 흘리고 있었고, 아이돌 연습생 최유진은 사람들의 시선에 겁을 먹은 채 가식적인 비즈니스용 미소를 지으려 애쓰고 있었지만 손가락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선택적 함구증을 앓는 서하은은 귀를 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온몸을 움츠렸다.
“조용히 해라, 김현우 군.”
남궁진이 차갑게 경고했다.
“이것은 이사회의 공식 의결을 거친 학칙이다. 불만이 있다면 학교를 떠나면 된다. 청아제일고는 낙오자를 안고 갈 여유가 없다.”
태희는 주먹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통증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저 꼴찌들이 과락을 맞는 순간, 자신 역시 퇴학이다. 퇴학을 당하는 순간 장학금은 날아가고, 태민이의 천식 호흡기 약값을 대지 못해 집안은 완전히 파멸할 것이다. 이것은 남궁진이 설계한, 하위권 학생들의 자진 퇴학을 유도해 학교 전체의 내신 평균 등급을 조작하려는 추악한 도태 시스템이었다.
태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정한 자세로 허리를 곧게 편 그녀는 중앙 통로로 걸어 나가 단상 아래 마이크 스탠드를 붙잡았다.
“학년 주임 선생님.”
태희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얼음물처럼 차갑고 투명하게 대강당 전체를 울렸다. 웅성거리던 아이들이 일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질문이 있습니다. 교육부 고등학교 학업성적관리 지침 제9조에 의하면, 평가는 학생 개인의 학업 성취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해야 하며, 집단적 연대책임이나 징벌적 성격의 평가 연동은 학생의 정당한 학습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립학교법 제2조의 자율성을 감안하더라도, 퇴학이라는 극단적인 징계를 성적과 연동하는 학칙 제14조는 교육청의 직권 감사 및 행정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셨습니까?”
남궁진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는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단상 아래의 태희를 내려다보았다. 강당 안의 온도가 1도쯤 떨어진 것 같은 침묵이 감돌았다. 전교 1등이 학교 당국과 학년 주임을 향해 법률과 지침을 들이대며 정면으로 선전포고를 날린 것이다.
남궁진은 마이크 볼륨을 낮춘 채 단상 아래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그는 오직 태희에게만 들릴 정도의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윤태희 양. 똑똑한 머리를 그런 데 쓰지 말아야지. 네 남동생 윤태민 군의 서울대병원 호흡기 치료비 전액 지원 계약서... 그리고 네 어머니의 요양원 근무지 보장 서류가 누구 결재 라인에 있는지 잊었나?”
태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남궁진의 안경 너머 비치는 눈빛은 독사처럼 집요하고 잔인했다. 그는 태희의 가장 약한 고리를 정확하게 쥐고 흔들고 있었다.
“재단 이사장님께서 네 아버지가 남긴 수억 원의 가계 부채를 인수해 압류를 유예해 준 것도 오직 네가 ‘전교 1등’이기 때문이다. F조 아이들을 기말고사 전에 스스로 자퇴하게 만들든지, 아니면 네 실력으로 평균 60점을 넘겨 증명해라. 만약 실패해서 한 명이라도 과락이 나오는 순간... 네 동생의 호흡기는 멈출 거다.”
태희의 호흡이 가빠졌다. 목을 죄어오는 보이지 않는 사슬이 느껴졌다. 그녀의 완벽주의 강박증은 가난과 멸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방어기제였다. 학교는 그녀의 실력을 탐내면서도, 동시에 가장 추악한 방식으로 노예처럼 부리려 하고 있었다. 태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녀는 마이크를 다시 꽉 쥐었다. 그리고 강당 뒤편에서 자신을 불신과 적대감으로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는 김현우, 최유진, 강민우, 서하은을 차례로 응시했다. 그들은 학교가 버린 낙제 쓰레기들이었지만, 이제 태희에게는 그들이 곧 자신의 목숨줄이었다.
“...이의 제기를 철회합니다.”
태희의 단호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흐르자 강당이 다시 동요했다.
“대신 선포합니다. 청아제일고 학칙 제14조에 의거, 공동운명체 F조의 팀장으로서 선언합니다. 기말고사 전까지 조원 전원의 평균 성적을 60점 이상으로 끌어올리겠습니다. 우리 조원 중 단 한 명도 낙제하거나 퇴학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굴복인 동시에, 거대한 사학 재단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향한 처절한 반란의 서막이었다.
***
조회가 끝난 방과 후, 낡은 본관 3층의 빈 교실.
태희는 칠판 가득 분필로 치밀한 계획표를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뽀모도로 시간 분할법, 하루 10시간의 극한 효율 학습 계획표, 과목별 취약점 분석 데이터. 그녀가 매일 밤샘 공부를 하며 코피를 쏟아가며 터득한 완벽한 1등의 공부 비법들이었다. 그녀는 이 오합지졸들을 군대처럼 통제하여 강제로라도 공부시킬 생각이었다.
드르륵.
교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김현우가 어깨에 가방을 삐딱하게 메고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로 유진과 민우, 하은이 쭈뼛거리며 눈치를 살 살 살피며 들어섰다. 현우의 얼굴은 분노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야, 전교 1등.”
현우가 태희의 책상 앞으로 다가와 칠판의 계획표를 쓱 보더니 냉소를 흘렸다.
“이딴 장난감 같은 계획표로 누굴 가르치려 들어? 너 재단 장학금 지키려고 우리 감시하는 개 노릇 하기로 작정했냐?”
태희는 분필을 내려놓고 현우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김현우 군. 착각하지 마. 나도 너희 같은 꼴찌들과 엮이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규정은 규정이고, 너희가 F를 맞는 순간 내 인생도 끝이야. 그러니까 닥치고 내 계획표대로 따라와.”
태희가 두꺼운 학습 플래너를 현우의 가슴팍에 들이밀었다. 그 순간, 현우의 눈빛이 사납게 돌변했다. 현우는 태희가 내민 플래너를 빼앗아 그 자리에서 반으로 찢어버렸다. 종이 가루가 교실 바닥으로 쓸쓸하게 흩날렸다.
“현우야, 하지 마...!”
유진이 비명을 지르며 말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현우는 한 걸음 더 다가와, 굳은살 가득한 거친 손으로 태희의 교복 깃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태희의 등이 차가운 칠판에 쿵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칠판 가득 적어두었던 계획표의 분필 가루가 두 사람의 어깨 위로 하얗게 쏟아져 내렸다.
“착한 척, 구원자 인 척 위선 떨지 마, 윤태희.”
현우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태희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으르렁거렸다. 그의 거친 숨결이 태희의 뺨에 닿았다.
“네 잘난 장학금 지키려고 우릴 기계처럼 굴리겠다고? 꿈 깨. 난 어차피 밑바닥 인생이야. 너 같은 잘난 년이 나랑 같이 퇴학당해서 시궁창으로 굴러떨어지는 꼴, 아주 기쁜 마음으로 구경해 줄 테니까.”
현우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태희의 목덜미를 옥죄었다. 목 끝까지 채워져 있던 교복 단추가 툭 하고 뜯겨 나가 바닥으로 굴렀다. 태희는 숨이 막혀오는 통증 속에서도 안경 너머의 차가운 눈빛을 잃지 않은 채 현우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오합지졸 문제아들과의 첫 자습 시간, 팀의 존속 자체가 완전히 산산조각 날 위기 속에서 차가운 교실의 공기가 팽팽하게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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