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사기꾼 수선자들의 출현과 손해사정
“……영석, 이십오 개라고?”
청풍문의 위엄 서린 문주, 백무현의 입술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연기기 완벽 경지의 강력한 영압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서지호의 정교한 주판 소리였다.
탁, 타닥, 탁.
지호는 황금빛 약관 종이들이 둥글게 소용돌이치는 ‘계약서 바인딩 배리어’ 너머로 턱을 괸 채, 아주 정중하고도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깃펜을 흔들었다.
“그렇습니다, 고객님. 저희 신성보험 본사 문짝은 단순한 나무판자가 아닙니다. 맹필두 장인께서 고탄성 청풍 대나무와 특수 오일을 배합해 제작하신 ‘안심 보안 방화문’이죠. 게다가 문주님의 무단 난입으로 인해 대기 중이던 잠재 고객 세 분이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가입을 보류하셨습니다. 일종의 영업 방해 및 기물 파손에 따른 특별 청구서입니다.”
“이, 이 요망한 서생 놈이……!”
백무현은 당장이라도 청풍강기를 뿜어 지호의 목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지호의 손에 들린 이수현 현령의 공식 영업 허가증과, 자신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는 거구의 구조대장 곽두팔의 무쇠 도끼에 머물렀다. 관청의 비호를 받는 합법적인 상단인 데다, 제자 백서연이 맺은 평생 계약의 인과율 방어막까지 버티고 있으니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일 명분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호가 슬쩍 내민 연대보증서에 적힌 ‘영석 만 개’라는 글자가 백무현의 가슴을 서늘하게 짓눌렀. 제자 백서연의 목숨값으로 영석 만 개를 대납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의 꼰대 같은 자존심을 완벽하게 꺾어버린 것이다.
“흥! 관청의 허가증을 가졌다고 해서 네놈의 무도한 사교 행위가 영원히 묵인될 줄 아느냐! 내 조만간 율법의 이름으로 네놈을 정식 고발할 터이니 그리 알아라!”
백무현은 씩씩거리며 소맷자락을 거칠게 휘날리고는 서둘러 퇴각했다. 그 뒤를 따르는 외문 장로 마귀안의 쥐새끼 같은 눈동자가 지호의 금고를 훔쳐보며 음산하게 번뜩였지만, 지호는 그저 콧노래를 부르며 부서진 문짝의 잔해를 정리할 뿐이었다.
“구조대장님, 부서진 문짝은 맹 감독님 대장간에 의뢰해서 더 두꺼운 흑철 프레임으로 교체해 주세요. 비용은 청풍문 청구서에 이자 5%를 가산해서 청구할 겁니다.”
“예, 사장님! 아주 튼튼하게 박아버리겠습니다!”
곽두팔이 우렁차게 대답하며 부서진 문짝을 가볍게 짊어졌다. 백서연은 지호의 철두철미한 자본주의적 대처에 깊은 감명을 받은 듯, 반짝이는 눈으로 지호를 바라보았다.
이로써 꼰대 문주의 무력 난입은 한 차례 폭풍처럼 지나갔고, 신성보험 청풍현 본점은 다시 평화로운 정상 영업 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평화가 길어질수록, 어둠 속에서 밥그릇을 빼앗긴 사파의 음모는 더욱 정교해지는 법이었다.
* * *
청풍현 북부 슬럼가 깊은 곳에 위치한 사파 ‘흑응방(黑亡山)’의 음산한 도박장 지하실.
독수리 같은 코에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흑응방주 염도현은 호랑이 가죽 망토를 거칠게 움켜쥐며 탁자를 내리쳤다.
쿵—!
“빌어먹을! 그 서생 놈의 ‘신성보험’ 때문에 우리 도박장과 사채 사업 수입이 반토막이 났다! 예전에는 기연을 찾겠다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다 다친 놈들에게 고리로 영석을 빌려주며 고혈을 빨았는데, 이제는 다들 노란 가마솥 뚜껑 같은 헬멧을 쓰고 에어백 위에서 널뛰기를 하고 있으니 다치는 놈이 없어!”
염도현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지하실에 모인 사파 무인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지호의 안전 인프라가 청풍현에 정착되면서, 무모한 도전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사채의 노예가 되던 하급 수선자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사파의 기생적 경제 구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구석에서 이빨을 누렇게 드러내며 얍삽한 미소를 짓고 있던 삼류 사기꾼 고독구가 슬그머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방주님, 그 서생 놈의 영석 금고를 합법적으로 털어먹을 기막힌 묘책이 있습니다.”
“묘책? 합법적으로 영석을 털어낸다고?”
“예. 그 서생이 파는 ‘낙하 상해 보험’의 약관을 정밀 분석해 보았습니다. ‘비행 중 혹은 낙하 중 발생한 신체 훼손 및 부상에 대해 치료비와 위로금으로 최대 하품 영석 100개를 즉시 지급한다’고 적혀 있더군요. 만약 저희 조직원 중 한 명이 정식 가입한 뒤, 사고로 손가락이라도 잘렸다고 청구하면 그 짠돌이 서생도 꼼짝없이 영석을 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염도현의 안대 너머 눈동자가 탐욕스럽게 빛났다.
“자해를 하겠다는 말이군. 하지만 그 서생이 눈치를 채면 어쩌려고?”
“헤헤, 걱정 마십시오. 제 왼손 새끼손가락을 스스로 깔끔하게 자른 뒤, 낙신애에서 떨어지다가 날카로운 바위칼에 베였다고 우기면 그만입니다. 범인의 칼에 맞았다고 위장하는 자해 위장술은 제 전문입죠. 영석 100개면 손가락 하나쯤은 아주 헐값 아닙니까?”
고독구는 일확천금을 노리며 자신의 왼손을 치켜들었다. 게으르고 비열한 사기꾼에게 손가락 하나는 영석 100개의 거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염도현은 흡족한 듯 호탕하게 웃으며 고독구의 어깨를 툭 쳤다.
“좋다! 당장 실행해라. 성공하면 네놈에게 영석 30개를 떼어주마. 신성보험의 금고를 탈탈 털어 파산시켜 버려라!”
* * *
다음 날 오후, 신성보험 청풍현 본점 대기실.
여느 때처럼 가입 상담을 받으려는 주민들과 제자들로 붐비던 대기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으아아아악! 사람 살려! 신성보험은 당장 내 치료비를 내놓아라!”
피비린내와 함께 들이닥친 사내의 비명에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꾀죄죄한 누더기 옷을 입은 고독구였다. 그의 왼손은 피가 흥건히 배어 나오는 더러운 붕대로 꽁꽁 감겨 있었고,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이고 도우님들, 이것 좀 보십시오! 내가 어제 신성보험에 하품 영석 5푼을 내고 정식 가입했는데, 오늘 아침 낙신애 중턱에서 약초를 캐다 발을 헛디뎌 추락했습니다! 다행히 에어백 위로 떨어져 목숨은 건졌지만, 떨어지는 와중에 날카로운 절벽 바위에 긁혀 내 소중한 새끼손가락이 잘려 나갔습니다!”
고독구는 피 묻은 붕대를 군중들에게 흔들어 보이며 억지 눈물을 쏟아냈다.
“이거 보십시오! 손가락이 뼈째로 잘려 나갔다고요! 약관에 분명히 신체 훼손 시 치료비와 위로금으로 영석 100개를 즉시 지급한다고 적혀 있지 않았습니까! 당장 내 영석 100개를 내놓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 사기꾼 회사를 가만두지 않겠소!”
대기실이 순식간에 수군거림으로 가득 찼다.
“쯧쯧, 정말 손가락이 잘려 나갔나 보네.”
“신성보험이 정말 영석 100개를 줄까? 짠돌이 서생이 순순히 내줄 리가 없는데.”
“만약 안 주면 저건 사기 보험이지!”
군중들의 여론이 동요하기 시작하자, 2층 집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지호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지호의 회색 도포 자락이 가볍게 흔들렸고, 그의 눈은 고독구의 피 묻은 왼손을 싸늘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지호가 가늘게 눈을 뜨자, 머릿속에서 황금빛 주판알이 회전하며 고독구의 이마 위로 붉은색 데스 카운트 스캔 창이 떠올랐.
`[D-40년 / 사망 원인: 췌장암 (확률 85%)]`
`[최근 신체 변화: 왼손 새끼손가락 절단 (경과 시간: 약 12시간 전)]`
`[정신 상태: 극도의 탐욕 및 거짓 연기 중 (거짓말 확률 99.9%)]`
‘거짓말 확률 99.9%라.’
지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뒤틀렸다. 역시 냄새가 났다. 한국에서 7년간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온갖 악질 자해공갈단과 보험 사기꾼들을 상대해 온 지호였다. 억지 동정을 유발하며 소리를 지르는 꼴이 영락없는 전형적인 삼류 사기꾼의 패턴이었다.
“고객님, 일단 진정하시지요.”
지호는 정중하고도 차분한 목소리로 군중의 동요를 가라앉히며 다가갔. 그의 손에는 돋보기와 미세한 영기가 흐르는 황금색 가루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저희 신성보험은 약관에 의거하여 정당한 사고 피해에 대해서는 1푼의 오차도 없이 신속하게 보상금을 지급해 드립니다. 다만, 보상금 지급 전 정확한 피해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손해사정’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손해사정? 그게 무슨 개소리야! 내 손가락이 잘려 나간 게 눈에 안 보이냐! 당장 영석을 내놓지 않으면 관청에 고발하겠다!”
고독구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윽박질렀다. 대기실 구석에 숨어 있던 그의 부하 무뢰배들도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지만 지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고독구의 왼손 앞으로 돋보기를 들이댔다.
“그럼 조사에 착수하겠습니다. 고객님, 다치신 상처의 깊이와 도포 자락의 찢어진 형태를 좀 보겠습니다.”
지호는 ‘칼날 각도 분석술(칼날 각도 분석술)’을 시전했다. 그의 시야 속에서 잘려 나간 손가락 단면과 찢어진 옷자락의 궤적이 황금빛 삼각측량 선으로 정밀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흠, 이상하군요.”
지호가 돋보기를 튕기며 차갑게 말했다.
“낙신애 절벽에서 추락하며 날카로운 바위에 긁혔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상처의 단면이 지나치게 수평으로 깔끔합니다. 추락 중 발생하는 신체 훼손은 중력과 낙하 속도 때문에 상처가 찢어지거나 불규칙한 각도로 파열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고객님의 단면은 정확히 45도 각도로 위에서 아래로 단번에 내리친 형태입니다. 이는 고정된 상태에서 예리한 칼날로 직접 내려쳤을 때만 발생하는 물리적 각도입니다.”
“무, 무슨 개소리야! 바위가 우연히 그렇게 날카로웠을 수도 있지!”
고독구의 이마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지호는 멈추지 않고 그의 붕대 자락을 가리켰다.
“더군다나, 도포 소매 자락의 찢어진 흔적이 상처 부위와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옷은 멀쩡한데 손가락만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바위칼이 도포 자락만 절묘하게 피해 손가락만 골라 베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게다가 상처 주변에 묻은 피의 응고 상태를 보니, 사고가 발생한 지 최소 12시간은 경과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다치셨다는 주장과 전면 배치되는군요.”
지호의 송곳 같은 논리 정연한 지적에 대기실의 주민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그렇네. 옷은 멀쩡한데 손가락만 잘리는 게 말이 돼?”
“시간도 안 맞잖아. 오늘 아침에 다쳤다면서 피가 왜 저렇게 말라붙어 있어?”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고독구는 얼굴을 붉히며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 짠돌이 서생 놈이 보험금을 안 주려고 억지 궤변을 늘어놓는구나! 물증도 없으면서 감히 나를 사기꾼으로 모함해?! 증거가 있으면 대봐라, 증거가!”
“증거를 원하십니까?”
지호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보여드리죠. 저희 신성보험의 특허 비기, ‘사고 현장 홀로그램 재현(사고 현장 홀로그램 재현)’을 가동하겠습니다.”
지호는 품속에서 황금색 가루 주머니를 열어 고독구의 왼손과 대기실 바닥을 향해 휙 뿌렸다.
스으으으으—!
뿌려진 미세한 가루들이 공중에서 반응하며 반투명한 영기 스크린을 형성했다. 대기실 내부가 어두워지며, 공중에 3D 입체 홀로그램 영상이 선명하게 투사되기 시작했다.
그 영상 속에 나타난 공간은 낙신애 절벽이 아니었다. 음산한 도박장 지하실의 모습이었다.
“어? 저긴 흑응방 지하 도박장 아니야?”
주민 한 명이 외쳤다. 영상 속에서 고독구는 탁자 위에 왼손을 올려놓고, 오른손에 시퍼런 식칼을 쥔 채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흑응방주 염도현이 안대를 만지작거리며 윽박지르고 있었다.
[“야 이 멍청한 놈아! 빨리 안 자르고 뭐 해! 손가락 하나만 자르면 영석 100개가 공짜로 들어오는데 뭘 망설여!”]
[“바, 방주님…… 진짜 자릅니다? 진짜로요? 아우, 무서운데…… 아아악!”]
홀로그램 속 고독구는 눈을 딱 감고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을 식칼로 내리쳤다. 피가 뿜어져 나오자 비명을 지르며 뒹구는 고독구의 비참하고 찌질한 자해 범행 순간이, 마치 어젯밤의 녹화 영상처럼 대기실의 모든 이들에게 생생하게 중계되었다.
“아이고, 저 찌질한 놈! 진짜 제 손으로 잘랐네!”
“흑응방 놈들이 단체로 사기를 치려고 작당을 했구나!”
주민들의 야유와 비난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고독구는 귀신을 본 듯한 표정으로 턱을 덜덜 떨며 뒤로 자빠졌다.
“이, 이게 무슨 요술이냐……! 어떻게 어젯밤의 일이 여기에 보인단 말이냐!”
지호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주판을 쾅 내려치며 선언했다.
“약관 제8조 ‘고의 사고 유발 금지령’에 의거하여, 가입자의 고의적인 자해 및 사기 청구는 보상금 지급이 원천 무효화됩니다. 또한, 고독구 고객님은 신성보험 최초의 ‘신용 불량자’로 등재되어 향후 모든 안전장비 사용 및 보험 가입 자격이 영구 박탈됩니다.”
“이, 이 서생 놈이 우리 방주님을 모욕하고 우리를 매장하려 드는구나! 얘들아, 당장 저 홀로그램 장치를 때려 부수고 금고를 털어라!”
고독구의 단말마 같은 외침에 대기실 구석에 숨어 있던 흑응방 무뢰배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며 지호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지호의 뒤에는 이미 굳건한 방어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어디서 감히 우리 사장님의 소중한 금고에 손을 대려 하느냐!”
구조대장 곽두팔이 우람한 가슴 근육을 실룩거리며 무쇠 철퇴를 붕붕 휘둘렀다. 백서연 역시 날카로운 안광을 뿜으며 안전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사장님, 이 사기꾼 놈들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예, 구조대장님. 비살상 방식으로 뼈만 가볍게 부러뜨려 주세요. 너무 많이 다치면 치료비 청구서가 복잡해지니까요.”
지호의 싸늘한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기실은 흑응방 무뢰배들의 비명과 몽둥이 찜질 소리로 가득 차올랐다. 자본주의 금융 질서를 어지럽히려던 사기꾼들의 말로는 이토록 비참하고 유쾌했다.
그러나 지호는 쓰러진 고독구를 내려다보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사기극은 분쇄했으나, 배후인 염도현이 자신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더 악랄한 음모를 꾸밀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염도현…… 감히 내 준비금 금고를 털어먹으려 해? 다음에는 아주 뼈째로 털어주마.’
청풍현의 밤이 깊어가며, 보이지 않는 사파의 자객들이 신성보험의 안전 인프라를 훼손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