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면의 자객과 찢어지지 않는 계약서 도포
밤 10시 15분. 음침학이 관청 포교들에게 끌려가며 내뱉은 저주 어린 경고는 청풍현 본점의 차가운 밤공기 속에 여전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호는 2층 집무실로 터덜터덜 걸어 올라갔다. 전신이 부서질 것처럼 노곤했다. 머리는 피뢰침의 정전기 때문에 여전히 사방으로 거칠게 뻗친 ‘폭탄머리’ 상태였고, 성대는 일시적으로 손상되어 침을 삼킬 때마다 까슬까슬한 모래를 삼키는 것 같았다. 입을 열면 쇳소리만 새어 나왔다.
“아으으…… 오른손목도 찌릿거리고, 목소리는 기계 고장 난 소리가 나고. 정말 과로사로 사망해서 사망 보험금 셀프 청구하게 생겼네.”
지호는 책상에 주저앉아 맹필두가 제련해 준 ‘계약서 방탄 도포’를 만지작거렸다. 버려진 폐계약서 수천 장을 영수 가죽과 혼합하여 압착 제련한 이 도포는 뻣뻣하지만 지호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철면귀라고 했나? 일급 살수라니, 대체 이 깡촌 청풍현에 왜 그런 거물이 오는 거야…….”
지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가 이 세계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단 하나, ‘파산’이었다. 자신이 죽으면 신성보험은 공중분해되고, 영혼은 천도의 인과율 장부 적자로 인해 소멸한다. 전투력 제로인 지호에게 있어 생존은 곧 비즈니스이자 물리적 현실이었다.
스산한 바람이 창문을 흔들었다.
스윽.
갑자기,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책상 위의 촛불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스르륵 꺼졌다. 암흑이 방 안을 지배했다. 지호의 목덜미에 돋아난 소름이 경고를 울렸다. 살기(殺氣)였다. 뼈를 얼려버릴 듯한 차가운 기운이 어둠 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소리도 없었다. 바람 한 점 일지 않았다. 하지만 지호의 데스 카운트 스캔 능력이 허공을 향해 격렬하게 깜빡였다.
`[D-3초 / 사망 원인: 심장 관통상 (확률 99.9%)]`
“헉!”
지호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차가운 은빛 궤적이 그의 목덜미를 향해 번개처럼 쏘아져 들어왔다. 소리 없는 일격, 철면귀의 암습이었다!
챙—!
그러나 방 안을 울린 것은 살점이 찢어지는 비명이 아니었다. 단단한 쇠붙이와 바위가 부딪치는 듯한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사방으로 황금빛 불꽃이 튀었다. 철면귀의 검 끝이 정확하게 지호의 쇄골 아래를 직격했으나, 지호가 입고 있던 계약서 방탄 도포 표면에 새겨진 약관 글씨들이 순식간에 황금빛으로 공명하며 충격을 튕겨낸 것이었다.
“……?!”
어둠 속에서 나직한 경악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철가면을 쓴 검은 그림자, 철면귀였다. 그의 무표정한 철가면 눈구멍 너머로 불신감이 가득한 눈동자가 번뜩였다. 일급 살수의 필살의 일격이, 고작 허름한 종이 쪼가리로 누덕누덕 기워 만든 도포에 막히다니?
“종이…… 도포가 내 검기를 막았다고?”
철면귀는 지체하지 않았다. 그의 신형이 다시 한번 흐려지더니, 이번에는 지호의 가슴과 목을 향해 연속으로 세 번의 찌르기를 감행했다. 슈슈슉!
챙! 챙! 챙!
그러나 칼날이 닿는 순간마다, 도포 표면의 압착된 계약서 종이들이 특유의 질긴 인장력과 마찰력을 발휘하며 칼날을 미끄러뜨렸다. 맹필두가 수천 장의 계약서를 고압으로 누르고 영력을 불어넣어 만든 방탄 도포의 내구성은 물리 법칙을 초월해 있었다. 칼날이 종이의 촘촘한 섬유질 사이에서 갈 길을 잃고 튕겨 나갔다.
지호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 속에 보관 중이던 소형 호신용 단도를 꺼내 막으려 했으나, 철면귀가 가볍게 휘두른 검풍 한 자락에 단도가 손에서 떨어져 나가 벽 깊숙이 박혀버렸다. 콰앙!
“아, 내 아까운 단도!”
지호는 성대가 손상되어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무공이 없는 그로서는 더 이상의 물리적 저항이 불가능했다. 철면귀의 검이 다시 한번 그의 미간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앉으려 했다.
바로 그 찰나, 지호는 현대 한국의 진상 민원인 상대 노하우가 집약된 최강의 심리 기술을 시전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가장 단호하고 정중한 ‘솔’ 톤의 보이스를 터뜨린 것이다.
“고객님! 무단 침입 및 가택 침입은 신성보험 약관 제4조 및 대하제국 형법 제12조에 의거, 즉각적인 형사 처벌 대상입니다! 또한 귀하의 무모한 무력 사용으로 발생한 본사의 기물 파손 비용은 전액 귀하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청구될 예정입니다!”
“……?!”
철면귀의 검이 지호의 코앞 1인치 거리에서 멈추어 섰다. 일급 살수로서 수많은 표적을 베어왔지만,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 자신을 ‘고객님’이라 부르며 민사 소송과 약관 조항을 읊어대는 미친 서생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지호의 기선제압 고객센터 보이스가 뿜어내는 정중하면서도 뻔뻔한 기세가 철면귀의 살기 어린 이성을 순간적으로 마비시켰다.
그 틈을 지호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마비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묵직한 가죽 바인더, ‘신성보험 계약서 원본철’을 쾅 내려쳤다.
“계약서 바인딩 배리어, 가동!”
스으으으으—!
원본철이 책상과 충돌하는 순간, 바인더 내부에서 푸른빛이 감도는 반투명한 계약서 종이 수만 장이 소용돌이치며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가입자들의 영혼 인과율 에너지를 매개로 작동하는 절대적인 방어막이었다.
펄럭이는 종이 장막들이 집무실 내부를 가득 채우더니, 이내 철면귀의 몸을 향해 쇠사슬처럼 무서운 속도로 얽혀들기 시작했다.
바스스스슥!
“이, 이게 무슨 사술이냐!”
철면귀가 검을 휘둘러 종이들을 베어내려 했으나, 종이들은 벨 때마다 오히려 두 배로 분열하며 그의 팔다리를 단단히 동여맸다. 수만 장의 약관 종이들이 철면귀의 온몸을 미라처럼 감싸 안으며 그의 기동력을 완전히 차단했다. 좁은 집무실 실내가 완벽한 종이 감옥으로 변했다.
철면귀는 온 힘을 다해 영기를 폭발시켰으나, 계약서 배리어의 구속력은 그의 살기를 매개로 작동하기에 힘을 쓸수록 종이 사슬은 더욱 단단하게 조여들 뿐이었다.
“크윽…… 하찮은 종이 쪼가리가 어찌 이리 단단하단 말이냐!”
철면귀가 몸을 부르르 떨며 신음했다. 지호는 책상 뒤에서 숨을 헐떡이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휴…… 살았다. 역시 약관의 구속력은 천도보다 질기지.”
하지만 철면귀는 대하제국 수도를 주름잡는 일급 살수였다. 팔다리가 묶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의 눈동자 속 살기는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무표정한 철가면 구멍 너머로 기괴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찰칵.
철면귀가 입을 쩍 벌리자, 철가면의 입 부위가 양옆으로 갈라지며 그 안에서 고순도 흑철로 제련된 살상용 암기 발사기가 튀어나왔다. 맹독이 발라진 세 갈래의 철침이 지호의 미간을 정확히 겨누었다.
“서생 놈아…… 내 팔다리는 묶었을지언정, 내 입까지 묶지는 못했구나. 죽어라!”
철침 끝에서 불길한 보라색 영기가 번뜩였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0.1초 만에 철침이 발사되면, 전투력 제로인 지호의 머리는 수박처럼 깨질 터였다.
`[경고: 사망 확률 99.9% / 남은 시간 0.1초]`
지호의 눈앞에서 데스 카운트 스캔이 비명을 지르며 붉은빛으로 방 안을 물들였다.
“어, 어? 이건 약관 면책 조항에 없는데?!”
지호가 눈을 질끈 감으려던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아앙—!!!
집무실의 대형 유리창이 요란한 파편을 휘날리며 통째로 박살이 났다. 밤하늘의 은은한 달빛을 등 뒤에 업고, 노란색 안전 헬멧을 쓴 미소녀 무인이 창문을 깨부수며 난입했다. 수석 안전 요원, 백서연이었다!
그녀는 손에 쥔 묵직한 안전 몽둥이를 허공에서 크게 휘두르며 자객을 향해 매섭게 포효했다.
“대사형을 살린 도사님에게 무슨 짓이냐, 이 불법 침입자 놈아! 안전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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