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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방지 약관과 피 흐르는 검사의 갱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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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릭. 그러니까, 내 허락 없이 죽는 놈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계약 파기 소송을 걸어버릴 겁니다.”


청풍현 신성 종합 의원의 복도. 서지호는 성대에 남은 미세한 정전기 여파로 여전히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를 쥐어짜 내며 중얼거렸다. 그의 머리카락은 지난밤 천겁의 벼락을 피뢰침으로 가로채던 충격으로 인해 여전히 사방으로 거칠게 뻗친 ‘폭탄머리’ 상태였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사파의 광인 같았지만, 그의 품에 안긴 가죽 서류 가방만큼은 지극히 정갈하고 세속적인 자본의 무게를 자랑하고 있었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대사형 대신 결투에 나서겠다는 미친 자가 나타났습니다!”


허겁지겁 복도를 달려온 백서연이 노란색 안전 헬멧을 치켜올리며 비명을 질렀다. 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릭. 진태양 그 오백 영석짜리 시한폭탄 새끼가 또 사고를 쳤습니까? 내가 분명히 의원 병상에 밧줄로 묶어두라고 했을 텐데요.”


“대사형이 아닙니다! 우리 청풍문의 내문 제자이자, 고통을 통해 검기를 연마하는 자학적 천재 여검사…… 소설희(蘇雪熙) 사매입니다! 사매가 지금 대사형을 대신해 설무극과의 생사결에 나서겠다며 제단에서 검을 갈고 있습니다!”


“뭐요? 소설희?”


지호의 머릿속에서 황금빛 주판알이 요란하게 굴러갔다.


소설희. 가문의 고집스러운 수련법에 따라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며 검력을 기르는 청풍문의 고위험군 천재. 무엇보다 그녀는 신성보험의 ‘골드 패밀리’ 등급에 가입되어 매달 꼬박꼬박 막대한 보험료를 납부하는 초우량 고객 중 한 명이었다. 만약 그녀가 설무극의 피빛 마검에 난도질당해 사망하거나 영구 장애를 입는 순간, 지호가 그동안 땀 흘려 모은 영석 준비금은 순식간에 치료비와 사망 보상금으로 대량 인출되어 공중분해 될 터였다.


“그 피 흘리는 마조히스트 처자가 왜 남의 결투에 끼어든답니까? 자기 목숨이 무슨 무한 리필 영석인 줄 아는 겁니까?”


“소 사매는 대사형이 문파의 기둥이라 믿고 있습니다. 대사형이 죽으면 청풍문이 망할 것이라며, 차라리 고통 수련으로 단련된 자신이 설무극의 검을 받아내겠다고…… 지금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자해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이 미친 뇌근육 동네는 왜 하나같이 남을 위해 죽어주지 못해 안달이냔 말입니다! 내 금고가 무슨 자선단체 기부함인 줄 알아요?”


지호는 찢어진 계약서 방탄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폭풍 질주를 시작했다. 옆에서 대기하던 수석 의사 김철수가 청진용 영석 청각통과 구급 상자를 챙겨 그 뒤를 따랐다.


* * *


청풍문 후산의 외딴 수련 동굴.


동굴 내부는 음산한 혈기와 쇠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동굴 한복판에는 검은 옷을 입고 온몸에 피 묻은 붕대를 칭칭 감은 음울한 인상의 소녀, 소설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허벅지를 자해용 단도로 사정없이 그어대며 흘러나오는 피를 검 끝에 모으고 있었다.


슥. 슥.


살점이 베여 나가는 끔찍한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질 때마다, 그녀의 검 끝에서 불길하고 날카로운 붉은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소설희는 고통으로 인해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입술을 깨물며 독백했다.


“더 큰 고통이 필요해…… 설무극의 마검을 꺾으려면, 내 육신을 더 찢고 짓밟아 혈살고통검결(血殺痛苦劍決)의 극의를 끌어올려야 한다. 대사형을 대신해 내가 죽더라도, 문파의 명예만은……”


“당장 그 미친 칼질 멈추지 못합니까, 소설희 고객님!”


동굴 입구를 부수듯 열고 난입한 지호의 쇳소리 섞인 호통이 동굴 벽을 때렸다. 소설희는 깜짝 놀라 단도를 쥔 채 맑고 음울한 눈동자로 지호를 올려다보았다.


“웬…… 폭탄머리를 한 해괴한 서생이 내 수련을 방해하는가? 비켜라. 나는 내일 청풍문의 명예를 위해 설무극과 생사결을 벌여야 한다.”


지호는 기가 막혀 뒷목을 잡았다. 그는 가늘게 눈을 뜨고 그녀의 이마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데스 카운트 스캔, 가동.’


`[D-3일 / 사망 원인: 과다출혈 및 설무극의 검격에 의한 장기 파열 (확률 99.1%)]`


일주일도 안 남은 시한부 타이머가 붉게 깜빡이고 있었다. 게다가 사망 원인의 절반은 설무극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제 몸을 난도질한 과다출혈 때문이었다. 이건 수련이 아니라 합법을 가장한 자살 행위였다.


“명예? 명예가 밥 먹여 줍니까? 소설희 고객님, 당장 그 칼 내려놓고 제 목소리를 똑바로 들으십시오!”


지호는 품속에서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한 가죽 계약서 뭉치를 꺼내 그녀의 코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전생에 홈쇼핑 보험 성우들에게서 전수받은 초고속 면책 조항 낭독 비기를 시전했다.


“약관 제4조 2항 고의 사고 유발 금지령에 의거하여 가입자가 스스로 신체에 물리적 타격을 가하거나 가학적 공법인 혈살고통검결을 활용해 고의적인 출혈 및 골절을 유발하는 행위는 명백한 자기 파괴적 자해 행위로 규정되어 사고 발생 시 치료비 청구 및 장애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전액 제외되며 이를 숨기고 결투에 임해 발생하는 사망 사고 역시 면책 조항이 적용되어 유가족에게 단 1푼의 영석도 지급되지 않음은 물론 계약이 즉시 영구 취소되어 블랙리스트에 등재됨을 알려드립니다!”


초당 15음절이 넘는 속사포 같은 법률 용어가 동굴 안을 쇠사슬처럼 휘감았다. 소설희는 고통 수련으로 단련된 강인한 정신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머리털 나고 처음 듣는 기상천외한 현대식 약관 낭독의 파동에 뇌가 일시적으로 정지한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문파를 위해 내 육신을 희생하여……”


“모르겠으면 외우십시오! 쉽게 말해, 본인이 직접 그은 상처는 보험금 지급이 안 된다는 소리입니다! 당신이 내일 결투에서 죽으면 당신 가문은 장례비 1푼도 못 받고 신용 불량자로 강등당해 청풍현에서 매장당할 거란 말입니다!”


지호가 붉은 깃펜으로 계약서 뒷면의 깨알 같은 면책 조항을 콕콕 찔렀. 옆에서 대기하던 김철수가 혀를 차며 구급 상자를 열고 다가왔다.


“비켜봐, 지호야. 이 환자 상처 상태가 아주 가관이다. 야, 너 이 단도에 녹슨 거 안 보여? 파상풍이 뭔지는 알아? 이 음산한 동굴 먼지 속에서 맨살을 찢고 앉아있다니, 의학적 상식이 전혀 없는 무식한 환자로군!”


철수는 가차 없이 소설희의 손에서 자해용 단도를 빼앗아 동굴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팅그렁! 소리와 함께 단도가 굴러갔다.


“무, 무슨 짓이냐! 내 수련 도구를……!”


“시끄럽고 가만히 있어!”


철수는 소설희의 어깨를 강제로 누르고, 구급 상자에서 독한 소독액을 꺼내 그녀의 허벅지 상처에 사정없이 부었다.


촤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소설희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스스로 칼로 살을 찢을 때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던 독한 검사가, 현대식 소독약의 가공할 만한 따가움 앞에서는 온몸을 뒤틀며 눈물을 흘렸다.


“이, 이 독랄한 액체는 무엇이냐! 내 살점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이것이 사파의 독공이더냐!”


“독공은 무슨, 위생 소독이다 이 무식한 환자야! 상처 부위에 세균이 감염되어 단전이 썩어 들어가는 걸 막아주는 의학 기술이라고!”


철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은침을 꺼내 그녀의 삼음교 혈맥에 정확히 꽂아 영력의 자학적 역류를 강제로 차단했다. 이어 상처 부위에 활혈거어탕(活血祛瘀湯) 성분이 가득 함유된 고성능 약재 연고를 듬뿍 바르고, 깨끗하고 따뜻한 하얀색 붕대로 그녀의 허벅지와 팔을 꼼꼼하게 감싸 쥐었다.


지호는 옆에서 턱을 괴고 잔소리 폭탄을 퍼부었다.


“소설희 고객님. 본인의 몸은 본인 것이 아닙니다. 저희 신성보험의 소중한 자산 포트폴리오 중 하나란 말입니다. 매달 우량한 보험료를 내는 고객이 이따위 뇌근육식 자학 수련으로 제 수명을 갉아먹고 있으면, 지켜보는 제 가슴이 찢어지겠습니까, 안 찢어지겠습니까? 돈이 아까워서라도 당신은 절대 죽으면 안 됩니다!”


“돈…… 때문이라고?”


소설희는 붕대로 정갈하게 감싸진 자신의 다리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태어난 가문과 문파에서는 언제나 “고통을 참아라”, “문파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라”, “상처는 무인의 훈장이다”라며 그녀의 자해를 칭송하고 부추기기만 했다. 아무도 그녀의 상처를 더럽다고 지적하거나, 아프지 않냐며 따뜻한 붕대를 감싸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해괴한 폭탄머리 서생은 겉으로는 지독하게 돈을 따지고 화를 내면서도, 자신에게 더 이상 피를 흘리지 말라며 윽박지르고 있었다.


따뜻하게 감싸진 붕대의 온기가 그녀의 얼어붙었던 자학적 내면에 묘한 파동을 일으켰다. 소설희의 눈가에 붉은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뺨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아무도…… 내게 아프지 않냐고 물어봐 준 적이 없었다. 그저 강해지기 위해 피를 흘리라고만 했을 뿐…….”


“당연히 아프죠! 칼로 제 살을 긋는데 안 아픈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고객님, 제발 정신 차리세요. 살아남아야 다음 달 보험료도 내고 기연도 얻을 것 아닙니까!”


지호가 츤데레처럼 따뜻한 꿀물 한 잔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소설희는 눈물을 훔치며 꿀물을 받아 마셨다. 그녀의 이마 위에서 깜빡이던 붉은 데스 카운트 타이머가 실시간으로 늘어나며 녹색 안정 수치로 변해가는 모습이 지호의 시야에 선명히 들어왔.


`[D-50년 / 사망 원인: 노환 (확률 95.2%)]`


“후우…… 오백 영석 세이브 완료.”


지호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바로 그 순간.


쿠구구구구—!


동굴 전체가 무시무시한 살기와 진동으로 인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청풍문 연무장 한복판에서, 대지를 찢어발길 듯한 피비린내 나는 검압과 함께 웅장한 포효가 청풍현 전체를 뒤흔들며 울려 퍼졌다.


“진태양-!!! 이 겁쟁이 태양 놈아! 감히 하찮은 계집의 뒤에 숨어 목숨을 연명하려 드느냐! 내일의 결투 필요 없다! 당장 기어나와 내 마검의 이슬로 사라져라-!!!”


설무극이 약속된 시간보다 하루 앞서, 살기에 미쳐 청풍문 연무장 한복판에 기습 난입한 것이었다. 동굴 밖에서 들려오는 가공할 만한 살인귀의 포효에, 소설희는 다시 단도를 쥐려 몸을 일으켰고 지호는 “아니, 저 미친 빌런 새끼가 영업시간 외 규정을 위반하고 쳐들어왔잖아!”라며 비명을 질렀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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