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결(生死決)이라니, 내 금고를 찢을 셈이냐!
철사문(鐵沙門)의 500 정예 무사단을 백만 볼트의 천겁 전류로 단체 감전 마비시키고, 그 대가로 흑철 광산 소유권까지 통째로 뜯어낸 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신성보험 청풍현 본점 2층 대표 집무실은 여전히 평화와 자본의 향기로 가득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대표이사 서지호의 몰골은 전혀 평화롭지 못했다.
“……지릭. 지리릭.”
지호는 책상에 앉아 흑철 광산 소유권 이전 계약서를 검수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밤 천겁의 잔류 전하를 정면으로 얻어맞은 여파로, 그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성게처럼 사방으로 꼿꼿이 솟구친 ‘폭탄머리’ 상태였다. 게다가 목청을 너무 무리하게 쓴 탓에 성대가 완전히 가라앉아, 입을 열 때마다 기계 부품이 마모되는 듯한 기괴한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대표님, 목소리가 여전히 쇠 긁는 소리 같습니다. 김 원장님이 조제해 준 활혈해독탕을 더 드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노란색 충격 완충 안전 헬멧을 정갈하게 쓴 백서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따뜻한 영차를 내려놓았다. 지호는 마비가 풀리지 않아 찌릿거리는 오른손목을 주무르며 왼손으로 찻잔을 들었다.
“……지릭. (괜찮습니다. 지금 목소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대하제국 수도로 진출하기 전에 청풍현의 손해율을 완벽하게 0%로 동결시켜야 안전하게 자본금을 이동할 수 있어요. 손영희 회계사에게 장부 정리를 서두르라고 하세요.)”
지호가 아주 작게 쇳소리로 소곤거리자, 백서연은 즉시 눈을 반짝이며 우렁찬 내공을 실어 집무실이 떠나가라 대변 통역을 실행했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신다! ‘목소리 따위는 자본의 흐름 앞에 사소한 장애물일 뿐! 수도 황도로 진출하기 전, 청풍현 지사의 가용 준비금을 단 1푼의 누수도 없이 완벽하게 동결하여 재정 건전성을 수호하겠다!’ 하신다!”
“아니, 서연 씨. 제발 목소리 톤 좀 낮춰요. 바로 옆에 있는데 왜 사자후를 지릅니까?”
지호가 귀를 감싸 쥐며 미간을 찌푸렸다. 백서연은 지호를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위대한 대현자’로 굳게 믿고 있었기에, 그의 사소한 속삭임 하나도 천기(天機)의 가르침처럼 웅장하게 전파하려는 광신적인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1층 로비에서 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신성 수호대 대원 하나가 문을 벌컥 열며 비명을 질렀다.
“대,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청풍문 연무장에 피비린내를 풍기는 미친 검객 놈이 난입했습니다!”
지호의 주판을 튕기던 왼손가락이 굳었다.
“……지릭? (누구요?)”
“사망 유도자라 불리는 광기 어린 검객, 설무극(薛無極)입니다! 그자가 대사형 진태양(陳太陽) 도협에게 붉은색 생사결(生死決)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지금 연무장은 당장이라도 피바다가 될 분위기입니다!”
“생사결?!”
지호의 뇌리에서 황금빛 주판알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경고음을 울렸다.
진태양.
청풍문의 대사형이자, 지난번 천겁 대란 때 지호가 목숨을 걸고 피뢰침을 꽂아 살려놓은 신성보험 최고의 VIP 우량 고객. 그자의 생명 보장 계약서에 명시된 사망 보상금은 무려 하품 영석 오백 개(500)였다.
만약 진태양이 결투에서 목을 베여 사망하는 순간, 신성보험 청풍현 본점의 금고는 문자 그대로 찢어발겨져 공중분해 될 터였다. 흑철 광산을 얻어 이제 막 흑자 전환의 기쁨을 누리려던 찰나에 들이닥친 초유의 파산 리스크였다.
“내 오백 영석……! 저 대책 없는 뇌근육 자살 특공대 새끼가 또 내 금고를 찢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지호는 마비된 오른손을 꽉 쥐고 벌떡 일어났다. 그의 폭탄머리가 분노의 정전기로 인해 더욱 웅장하게 뿜어져 나왔다.
“……지릭! (서연 씨, 곽두팔 대장 호출하세요! 당장 연무장으로 폭풍 질주합니다!)”
백서연이 대도와 몽둥이를 움켜쥐며 우렁차게 소리쳤.
“대표님의 긴급 파산 방어령 발동! 대사형의 목숨과 회사의 자산을 위협하는 광인 설무극을 단죄하러 출동한다!”
* * *
청풍문 연무장은 이미 가공할 만한 살기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연무장 한복판에는 창백한 안색에 음산한 피비린내를 풍기는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붉은 안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피빛 마검(魔劍)이 매달려 있었고, 발밑의 잔디들은 그가 뿜어내는 살기만으로 검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자가 바로 중원 전역을 돌며 강자들의 목을 베어 명성을 쌓아온 미친 검객, 설무극이었다.
“진태양, 네놈이 천겁을 견디고 축기기의 경지에 올랐다는 소문을 들었다.”
설무극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붉은색 생사결 도전장을 진태양의 발밑에 던졌다.
“내 마검의 제물이 되어라. 네놈의 목을 베어 내 마검의 살기를 완성하겠다. 거부한다면 이 연무장에 서 있는 청풍문의 애송이 제자들부터 차례로 도륙해 주마.”
제단 위에는 화려한 금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 황금관을 쓴 진태양이 화염 보검을 쥔 채 서 있었다. 축기기 돌파 성공의 기고만장함에 취해 있던 진태양은, 설무극의 도발에 오히려 눈을 빛내며 가슴을 폈다.
“하하하! 감히 내 태양진화결(太陽眞火結)의 위력을 모르고 덤비는구나! 사내가 어찌 결투를 피하겠는가! 내 오늘 너의 마검을 부수고 무림에 내 의기(義氣)를 널리 알리겠다!”
“대사형! 안 됩니다! 저자는 피에 굶주린 살인귀입니다!”
주변 제자들이 만류했으나,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대사형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진태양이 검을 뽑아 들고 결투장에 막 발을 내딛으려던 바로 그 순간.
“……지리리릭! (거기 멈춰라, 이 멍청한 가입자 새끼야!)”
연무장 입구를 뚫고 찢어진 계약서 방탄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폭탄머리의 서생이 난입했다. 지호의 뒤로 노란 헬멧을 쓴 백서연과 곽두팔 구조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대열을 갖추며 진입했다.
지호가 쇳소리로 다급하게 소근거리자, 백서연이 즉시 내공을 실어 사자후로 통역을 개시했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신다! ‘거기 멈춰라, 이 대책 없는 뇌근육 가입자 새끼야! 네놈이 죽는 순간 내 금고에서 영석 오백 개가 날아가는데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벌이느냐!’ 하신다!”
진태양이 깜짝 놀라 지호를 바라보았다.
“오, 도사님! 염라대왕의 장부를 찢으신 나의 구세주여! 어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하지만 무인의 명예가 걸린 생사결입니다. 이번만큼은 말리지 마십시오!”
“명예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지호는 기가 막혀 이마를 짚었다. 그는 품속에서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한 가죽 계약서 뭉치를 꺼내 흔들며, 설무극과 진태양 사이의 결투장 한복판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 전투력은 제로였지만, 그의 걸음걸이에는 오백 영석을 지켜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광기가 서려 있었다.
설무극의 매서운 눈동자가 지호를 향했다.
“웬 하찮은 범인 서생 놈이 내 결투를 방해하느냐? 죽고 싶어 환장했군.”
설무극이 가볍게 소매를 휘두르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색 검기(劍氣) 충격파가 지호를 향해 사정없이 몰아쳤다. 일반 범인이라면 그 기세만으로도 오장육부가 뒤틀려 피를 토하며 쓰러질 살기였다.
“대표님!”
백서연이 경악하며 검을 뽑으려 했으나, 지호는 태연하게 가슴을 폈다.
파지지직—!
붉은 검기가 지호의 신체에 닿는 순간, 그가 입고 있던 계약서 방탄 도포 표면에 새겨진 수만 장의 약관 글씨들이 미세한 황금빛을 발하며 소용돌이쳤다. 맹필두가 폐계약서 종이를 가압 제련해 만든 도포는, 살기의 물리적 충격을 완벽하게 종이의 질긴 마찰력으로 상쇄시켜 튕겨내 버렸다. 지호는 털끝 하나 안 다치고 그 자리에서 유유히 안경을 치켜올렸다.
“……지릭. (무단 폭력 행위는 약관 제4조 위반입니다, 고객님.)”
백서연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웅장하게 통역했다.
“대표님께서 경고하신다! ‘공식 등록되지 않은 무단 무력 시전은 신성보험 약관 제4조 및 청풍현 치안 조례 위반이다! 감히 내 방탄 도포의 질긴 인장력 앞에서도 무모하게 칼을 휘두르다니, 무식함의 극치로구나!’ 하신다!”
설무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의 살기 검격을 맨몸으로, 그것도 종이 옷 하나로 완벽하게 무력화시킨 범인은 수선계 역사상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네놈…… 정체가 무엇이냐? 평범한 서생이 아니로군.”
지호는 대답 대신 가늘게 눈을 뜨고 설무극의 이마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데스 카운트 스캔, 가동.’
지호의 눈동자 속에서 미세한 황금빛 주판알과 소수점 그래프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내 설무극의 이마 위 허공에 피처럼 붉게 깜빡이는 디지털 숫자와 사망 원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D-7일 / 사망 원인: 살육마검결의 자학적 영력 역류로 인한 심장 파열 (확률 99.87%)]`
지호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현대 보험 계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저 설무극이라는 빌런은 남을 죽이기 전에 이미 제풀에 지쳐 뒤질 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환자였다.
지호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가장 온화하고 기품 있는 ‘솔’ 톤의 목소리를 쥐어짜 내어 속삭였다. 쇳소리가 섞였음에도 그의 말투에는 백전노장 보험 설계사 특유의 단호한 신뢰감이 서려 있었다.
“……지릭. (설무극 고객님. 남의 목을 베기 전에 본인의 왼쪽 가슴 단전부터 점검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백서연이 내공을 실어 광장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통역했다.
“대표님께서 꿰뚫어 보셨다! ‘설무극 고객님! 남의 목을 베어 명성을 쌓기 전에, 본인의 왼쪽 가슴 단전과 삼음교 혈맥의 파멸적 역류 상태부터 점검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하신다!”
설무극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창백하게 질렸다.
“네놈이…… 그걸 어찌 아느냐!”
“……지리릭. (살육마검결은 벨 때마다 상대의 피를 흡수하지만, 그 대가로 음산한 살기가 본인의 맥로에 고스란히 누적되는 자학적 공법입니다. 고객님은 최근 사흘간 밤마다 왼쪽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셨을 텐데요. 제 통계 수치에 따르면, 귀하의 남은 수명은 정확히 7일입니다.)”
백서연의 우렁찬 대변 통역이 이어지자, 연무장에 모인 수백 명의 제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살육마검결의 치명적인 결함……! 그걸 범인 서생이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고?”
“7일밖에 남지 않았다니! 과연 대표님은 염라대왕의 장부를 쥔 활불이 맞으시구나!”
설무극은 마검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의 문파에서도 극비로 다루어지는 공법의 치명적 결함과, 최근 자신을 괴롭히던 극심한 심장 통증을 저 폭탄머리 서생이 소수점 단위의 확률로 완벽하게 지적해 낸 것이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지호는 기세를 몰아 붉은 계약서 뭉치를 설무극의 코앞에 내밀었다.
“……지릭. (가입 신청서입니다. 신성보험의 ‘공법 부작용 안심 특약’에 가입하시고 오늘 결투를 취소하신다면, 저희 수석 의료 자문 김철수 원장의 특효 해독 침구술을 즉석에서 연동해 드리겠습니다. 명예롭게 죽는 것보다 살아남아 다음 분기 실적을 노리는 것이 진정한 수련의 시작입니다.)”
백서연이 감동적인 목소리로 통역을 마무리지었다.
“대표님께서 구원의 길을 제시하신다! ‘가입 신청서에 서명하고 무모한 살육 결투를 취소하라! 살아남아 다음 분기의 기연을 노리는 것이 진정한 수선(修仙)의 시작이거늘, 어찌 일주일짜리 목숨으로 영석 오백 개짜리 우량 고객을 해치려 드느냐!’ 하신다!”
설무극은 지호의 뻔뻔하고도 정교한 가스라이팅 화술과, 자신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데스 카운트 스캔의 압도적인 통찰력 앞에 완벽하게 기가 꺾였다. 그는 마검을 칼집에 꽂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광기 어린 검객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 그를 붙잡았다. 설무극은 이를 악물고 지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내 공법의 비밀을 밝혀낸 것은 경이롭다만, 생사결은 무림의 신성한 약속이다! 내 당장 이 자리에서 물러서지는 않겠다! 내일 이 시간까지 진태양이 결투장에 나오지 않는다면, 청풍문의 외문 제자들부터 한 놈씩 목을 베어 연무장을 피바다로 만들어 주마!”
설무극은 붉은 안개를 뿜으며 신형을 날려 연무장 담벼락 너머로 사라졌다.
결투는 일시적으로 지연되었으나, 내일까지 설무극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면 청풍현 전체가 피바다가 되고 신성보험은 대규모 사망 보험금 청구로 파산할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지호는 부풀어 오른 폭탄머리를 긁적이며, 품속의 계약서 가방을 고쳐 쥐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서는 설무극의 미친 결투를 합법적으로 찢어발길 기상천외한 ‘안전 비무대회 규제 조례’ 시나리오가 빠르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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