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우물과 300인의 똥바람
어스름한 새벽빛이 청풍현의 가로등 불빛과 교차하며 사라지던 아침. 여느 때라면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어검비행 수련을 하거나 가벼운 도인법으로 몸을 풀었을 청풍현의 수선자들이었지만, 오늘 아침의 풍경은 기이할 정도로 엄숙하고, 또 처절했다.
“구르르륵…….”
“끄으으으…….”
청풍현 골목길 여기저기서 짐승의 울음소리도, 마수의 포효도 아닌 기묘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수선자들의 단전 바로 아래, 즉 대장(大腸)이 뒤틀리며 내는 단체 비명이었다.
시장의 보따리상 오덕구는 양손으로 엉덩이를 움켜쥔 채 다리를 극단적인 ‘O’자 모양으로 구부리고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고, 청풍문의 한 하급 제자는 검을 타고 날아가려다 단전의 영기가 꼬이자 비명을 지르며 우물가 옆 수풀 속으로 번지점프를 하듯 처박혔다. 바람을 타고 청풍현 전체에 전례 없는 기묘하고 냄새나는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이른바, 삼백 무사가 동시에 뿜어내는 눈물겨운 똥바람의 서막이었다.
* * *
“사장님! 대표이사님! 서지호 사장님!!!”
쾅! 하고 신성보험 청풍현 본점의 두꺼운 흑철 프레임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헐떡거리며 집무실로 뛰어 들어온 수석 회계사 손영희의 안색은 이미 시체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 내려앉은 다크서클은 턱밑을 넘어 목덜미까지 내려올 기세였다.
지호는 지난밤 정전기 폭풍의 여파로 사방으로 뻗친 폭탄머리를 긁적이며, 쉰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 지리리릭…… 영희 씨, 아침부터 왜 그렇게 호들갑입니까? 가로등 보안 수수료 정산에 오차라도 생겼습니까?”
“수수료가 문제가 아니에요! 파산이에요! 우리 진짜 망했다고요!”
손영희가 품에 안고 있던 가죽 서류철을 책상 위에 쾅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두께의 종이 뭉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부 신성보험의 공식 붉은 직인이 찍힌 ‘사고 보상 청구서’였다.
“이게 다 뭡니까?”
“오늘 아침 우물물을 마신 청풍현 주민들과 수선자 300명이 단체로 식중독에 걸려 쓰러졌어요! 지금 신성 종합 의원의 병상은 이미 만원이라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있는 상태고요!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지난주에 마귀안 장로가 강제로 가입시킨 ‘질병 보장 특약’ 가입자들이라는 거예요!”
지호의 머릿속에서 황금빛 주판알이 초고속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질병 보장 특약. 가입자가 역병이나 식중독 등의 질병으로 가사 상태 혹은 심각한 신체 마비에 처할 시, 1인당 치료 보상금으로 하품 영석 10개를 무조건 지급한다.’
하품 영석 10개.
평범한 범인 가구의 10달 생활비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그것이 지금 몇 명이라고?
‘300명.’
300 곱하기 10은.
‘하품 영석 삼천 개(3,000).’
“……지리릭.”
지호의 성대에서 기계 오작동 같은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삼천 개의 영석이라니. 지난밤 천겁석 배터리를 완충시켜 대박을 터뜨렸다고 좋아했던 자본금의 세 배에 달하는 초유의 액수였다. 이 보상금을 전부 지급하는 순간, 신성보험은 개업 한 달 만에 완벽하게 공중분해되어 파산할 터였다. Reincarnation(전생) 전, 한국에서 하루 3시간씩 자며 보험을 팔아 겨우 빚을 갚았던 지호에게 ‘파산’이라는 단어는 영혼의 소멸보다 더 끔찍한 트라우마였다.
“말도 안 돼…… 300명이 단체로 식중독이라고? 청풍현 역사상 이런 대규모 역병은 없었잖아!”
지호가 마비된 오른손목을 왼손으로 꽉 붙잡으며 비명을 지르려던 찰나, 본사 건물이 통째로 흔들릴 정도의 웅장한 고함 소리가 1층 로비에서 들려왔다.
“돈 내놔라! 이 사기꾼 서생 놈아! 배가 아파서 단전이 터질 것 같다!”
“내 장기가 녹아내리고 있다! 당장 약관에 적힌 영석 10개를 지급해라!”
창문 너머로 내다보니, 이미 신성보험 본사 앞마당은 지옥도 그 자체였다. 청풍문의 삼류 제자들부터 시작해 도끼를 든 사파 무인들, 시장 상인들까지 수백 명의 군중이 배를 움켜쥔 채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본사 문을 부술 기세로 밀려들고 있었다. 그들의 똥줄이 타들어 가는 절박함은 그 어떤 천겁의 번개 폭풍보다도 파괴적이었다.
* * *
“고객님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질병 보상은 의원의 공식 진단서가 발급되어야 심사가 진행됩니다! 무작정 칼을 뽑으셔도 규정상 지급이 불가능하다고요!”
1층 프론트 데스크에서는 고객센터장 조미녀가 초대형 목조 주판을 방패막이 삼아 들고 사자후를 토해내고 있었다. 국밥집 이모 출신다운 무시무시한 목청이었지만, 당장 항문이 개방될 위기에 처한 무사들의 광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끄럽다! 내 단전의 영기가 똥기(糞氣)로 변해 뿜어져 나오기 직전이란 말이다! 비켜라!”
일류 무사 한 명이 칼을 뽑아 들고 조미녀의 주판을 내리치려던 찰나.
“지, 지리리릭—!!!”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금속성 쇳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온 마당에 울려 퍼졌다. 정전기로 가득 부풀어 오른 폭탄머리에 낡은 계약서 방탄 도포를 대충 걸친 지호가 2층 난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호의 왼손에는 구리로 급조한 대형 확성기가 쥐어져 있었다.
지호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자, 옆에 서 있는 백서연에게 눈빛으로 사인을 보냈다. 백서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청풍문의 정통 내공을 실어 지호의 수신호를 우렁찬 목소리로 통역하기 시작했다.
“모두 정숙하십시오! 신성보험 대표이사 서지호 사장님께서 말씀하신다!”
지호가 왼손으로 확성기를 대고 쇳소리를 내뱉었다.
“고, 고객님들…… 화를 내셔도 규정상…… 즉시 지급은 불가능합니다…….”
백서연이 이를 받아 목청을 높였다.
“화를 내며 칼을 휘두르셔도 약관 제4조 2항에 의거, 공식 진단서 없는 무단 청구는 전액 기각 처리된다! 오히려 기물 파손죄로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어 에어백 구조 혜택까지 박탈당할 수 있음을 엄중히 경고한다!”
블랙리스트.
그 무시무시한 단어가 나오자, 칼을 들고 날뛰던 사파 무인들의 기세가 움찔하며 꺾였다. 낙신애에서 떨어질 때 에어백을 치워버리겠다는 협박은 수선자들에게 있어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 속에서 들려오는 “구르르륵!” 하는 굉음은 그 사법적 경고마저 초월하려 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신성 종합 의원은 이미 환자들로 터져 나가서 진단서를 끊을 수가 없다! 당장 배가 아파 죽겠는데 규칙만 따질 셈이냐!”
군중들의 분노가 다시 임계점에 도달하려 하자, 지호는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렸다. 이성을 잃은 군중에게 도덕이나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오직 그들의 이기적인 ‘개인주의’와 ‘소액의 현금’을 자극해야 대열을 흩뜨릴 수 있었다.
지호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열어, 반짝이는 하품 영석 조각(푼)들을 한 움큼 꺼내 들었다.
“영석 페이백 미끼 뿌리기 가동.”
지호가 허공을 향해 영석 조각들을 가볍게 뿌렸다. 반짝이는 영석 파편들이 햇빛을 받아 광장에 비처럼 흩날렸다. 수선자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황금빛 돈 냄새를 쫓아 빠르게 움직였다.
“지리릭…… 오늘 선착순으로…… 신성 종합 의원에 등록하여 질병 접수를 하시는 고객님들께는…… 긴급 재난 위로금으로 영석 1푼을 현장에서 즉시 페이백해 드립니다!”
백서연의 우렁찬 통역이 광장에 쐐기를 박았다.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서 의원으로 향하는 분에 한해, 첫 달 보험료의 일부를 즉시 캐시백으로 돌려주겠다! 단, 새치기를 하거나 대열을 무너뜨리는 자는 위로금 지급 대상에서 즉시 제외되며 가입이 취소된다!”
그 선언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금 전까지 본사 문을 부수려던 단단한 군중의 결속력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내가 먼저다! 비켜라, 내 배 속의 영기가 먼저 폭발하려 한다!”
“비켜! 나는 실버 회원이다! 내가 먼저 캐시백을 받아야 해!”
300명의 무사들은 서로를 밀쳐내며 신성 종합 의원 방향으로 아름답고 정갈한 일렬종대 대열을 스스로 형성하기 시작했다. 영석 1푼이라는 아주 사소한 자본주의적 미끼가, 분노한 폭도들을 순식간에 통제 가능한 온순한 대기 가입자들로 전향시킨 순간이었다.
지호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2층 난간에서 내려와 손영희에게 지시했다.
“영희 씨…… 즉석 페이백으로 하품 영석 10개 분량의 손실이 발생했으니 장부에 긴급 마케팅 비용으로 처리하세요. 그리고…… 미녀 센터장님은 주민들이 다른 우물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차단선을 치세요. 이건 단순한 식중독이 아닙니다.”
지호의 눈매가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300명이 동시에 식중독에 걸렸다는 것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대규모 역병 리스크를 조작해 신성보험을 파산시키려 테러를 감행했음을 의미했다.
* * *
같은 시각, 신성 종합 의원 내부.
“비켜! 비켜라! 클리어(Clear)—!!!”
하얀 의원 도포를 바람에 휘날리며, 안경을 치켜올린 김철수가 침상 위에 누워 부르르 떨고 있는 하급 무사의 가슴팍에 정전기 충격 부적을 팍 내리붙였다.
파지지직—!
미세한 전류 충격이 가슴을 때리자, 무사는 “컥!” 소리와 함께 눈을 부릅뜨며 단전의 뒤틀린 영기를 진정시켰다. 철수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청진용 영석 청각통을 귀에서 빼냈다. 의원 마당과 복도는 이미 배를 움켜쥐고 뒹구는 환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철수야! 원인 분석은 끝났어?”
지호가 폭탄머리를 흔들며 의원 안으로 급히 들어섰다. 철수는 코끝에 걸친 안경을 밀어 올리며, 책상 위에 놓인 영석 구동식 돋보기(현미경)와 환자들의 가래 및 대변 샘플이 담긴 유리 용기를 가리켰.
“지호야, 상황이 아주 심각해. 이건 단순한 상한 음식으로 인한 이질이 아니야.”
철수가 영석 돋보기의 렌즈를 조율하며 지호에게 보라고 손짓했다. 지호가 돋보기에 눈을 대자, 환자의 샘플 내부에서 기이할 정도로 끈질기게 요동치는 보라색 독기 분자 패턴이 선명하게 시각화되어 보였다. 일반적인 세균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인위적으로 제련된 독의 기운이었다.
“이 보라색 영기 패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래. 청풍현 주변의 음습한 계곡에서만 자생하는 특수 독초, ‘설사초(Laxative Herb)’의 성분이야. 독공을 수련하는 사파 놈들이 아주 미량으로 제련해 우물에 풀었음이 틀림없어. 영기 감지 진법에도 걸리지 않도록 고도로 정제된 변종 독이야.”
철수의 안경 렌즈 너머로 차가운 빛이 스쳤다.
“일반 범인이라면 사흘 밤낮 동안 대장이 뒤틀려 가사 상태에 빠지고, 내공이 약한 연기기 하급 수선자들은 단전의 영기가 완전히 마비되어 수련이 폐지될 수준의 악랄한 설사독이야. 누군가 작정하고 우리 병원과 너희 보험사를 타겟으로 삼아 공동 우물에 독극물 테러를 저지른 거지.”
공동 우물 설사독 살포 테러.
지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배후는 뻔했다. 가로등 사업으로 야간 범죄 수익이 파탄 나고 상납금 압박에 시달리던 흑응방주 염도현과, 김철수의 종합 의원 때문에 밥그릇이 깨져 허위 고발을 일삼던 청풍현 의원 연합의 회장 갈조기 일당의 유착 음모가 분명했다.
“이 더러운 사기꾼 놈들이 감히 내 질병 특약 금고를 털어먹으려고 대규모 테러를 기획해?”
지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삼천 개의 영석을 청구해 자신을 완벽히 파산시키려던 그들의 비열한 꼼수가 과학적 분석 앞에 낱낱이 드러난 것이다.
“철수야, 해독제 제조는 가능해?”
“기존의 비싼 영약 대신, 청풍초와 사향을 결합해 개량한 내 ‘활혈거어탕’ 제조법을 응용하면 반나절 내로 초저가 대량 해독 탕약을 만들 수 있어. 하지만…….”
철수가 지호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경고했다.
“청풍초 원자재 재고가 부족해. 반나절 내로 대량의 청풍초를 구해서 해독제를 살포하지 못하면, 저 환자들의 대장이 파열되어 사망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진짜 ‘파산 임계점’에 도달하게 될 거야. 남은 골든타임은 단 6시간뿐이다.”
6시간.
지호는 굳게 닫힌 의원 창문 너머로, 여전히 배를 움켜쥔 채 침을 흘리며 줄을 서 있는 300명의 가입자들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파산의 똥바람이 신성보험의 턱밑까지 몰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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