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현에 켜진 전등과 사파의 마지막 꼼수
만뢰정 정상에서 벌어진 천겁 대란이 가라앉은 지 이틀째 되던 날.
청풍현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밝아왔으나, 낙신애 아래 계곡에서부터 시작된 기묘한 공사 소음만큼은 평소와 완전히 달랐다.
깡! 깡! 깡!
“어이! 거기 독고 가문 인턴들! 흑철 도선 똑바로 안 잡아?! 대장장이 신의 혈통인 우리 조상님 가마솥에 흠집이라도 나면 니들 일당에서 영석 반 푼씩 깔 줄 알아!”
부풀어 오르다 못해 정전기로 사방으로 뻗친 폭탄머리를 한 서지호가 쉰 목소리로 메가폰을 쥔 채 빽빽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완전히 잠겨 쇳소리가 섞여 나왔지만, 그 매서운 눈빛만큼은 여전히 7년 차 보험 설계사 특유의 날카로움이 살아있었다. 옆에 서 있던 백서연이 그의 손짓 발짓을 보며 능숙하게 통역을 덧붙였다.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도선 연결이 불량하면 오늘 밤 성과급은 국물도 없을 것이며, 계약서에 명시된 강제 노역 80시간에서 단 1분도 차감해 주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 서슬 퍼런 외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백 근이 넘는 구리 도선 뭉치를 짊어지고 가파른 절벽을 오르던 거구의 사내들이 일제히 어깨를 움츠렸다. 그들은 다름 아닌, 며칠 전 신성보험의 에어백을 철거하겠다며 대도를 휘두르다 체포된 ‘독고 가문’의 엘리트 무사들이었다.
“으윽…… 우리가 어쩌다 이런 서생 놈 밑에서 노가다를 뛰고 있는 거지?”
“말 마라. 가주님께서 사인하신 ‘에어백 훼손 및 영업 방해 합의 계약서’의 벌금이 하품 영석 오백 개란다. 그걸 몸으로 때우려면 이 ‘무급 안전 요원 인턴십’ 80시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행해야 해. 젠장, 흑철 전선은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독고 가문의 무사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지호의 눈치를 살피며 흙을 파고 청풍 대나무 지지대를 박아 넣었다. 전투력은 제로에 가깝지만, ‘돈’과 ‘약관’이라는 무시무시한 사회적 구속력을 쥔 지호 앞에서는 일류 무사들의 기세도 한낱 일용직 인부와 다름없었다.
지호는 마비되어 여전히 찌릿거리는 오른손목을 계약서 방탄 도포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왼손으로 황금빛으로 빛나는 천겁석 배터리 그리드를 확인했다. 만뢰정 지하 광맥에 매장된 천겁석 배터리는 지난밤 진태양의 천겁 벼락을 100% 흡수하여 터질 듯한 에너지를 머금고 있었다.
‘이 미친 천벌의 번개 에너지를 그냥 놔두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지만…… 맹 감독님이 제련한 변전 진법을 거치면 완벽한 청정 생활 전력이 되지.’
지호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현대 한국에서 밤낮으로 빌딩 숲을 누비며 배운 인프라의 중요성. 어두운 밤길은 곧 야간 상해 사고의 온상이었고, 그것은 곧 신성보험의 재정적 파산(사망 및 부상 보험금 청구)으로 이어지는 지옥의 연결고리였다. 밤에 수선자들이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뎌 낙신애로 떨어지거나, Robber(노상강도)들에게 습격당해 치료비를 청구하는 손해율을 줄이려면 청풍현 자체를 ‘밝고 안전한 도시’로 개조해야 했다.
이른바, **뇌전 에너지 그리드 제어술** 사업의 시작이었다.
맹필두가 고열의 단조 화로에서 정밀 제련해 낸 구리 도선들이 청풍 대나무utility poles(전신주)를 타고 청풍현 골목골목으로 거미줄처럼 뻗어 나갔다. 도선의 끝에는 투명한 영석 판으로 감싼 노란색 전등들이 매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청풍현을 덮친 순간.
지호는 신성보험 청풍현 본점 앞마당에 설치된 거대한 흑철 제어반의 레버를 왼손으로 쾅 내려쳤다.
지리리릭—!
찰나의 순간, 만뢰정 지하에서부터 뻗어 나온 순수한 뇌전 에너지가 구리 도선을 타고 청풍현 전역으로 거침없이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파앗! 팟! 파아아앗—!
어둡고 음산했던 청풍현의 밤거리가 일제히 노란색 영석 전등의 따뜻한 빛으로 뒤덮였다. 시장통 골목길, 낙신애 입구, 관청 앞 광장까지 단 한 군데의 음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밝은 인공 광원이 밤을 몰아냈다.
“오, 오오오……! 이게 무슨 기적이냐!”
“밤인데…… 밤인데 앞마당의 개미 새끼 한 마리까지 다 보인다!”
주민들이 집 밖으로 쏟아져 나와 눈을 비비며 가로등을 올려다보았다. 청풍문 제자들도 노란 안전 헬멧을 쓴 채 연무장에서 뛰어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밤마다 어둠을 틈타 기습 수련을 하거나 짚더미에 걸려 넘어지던 삼류 무사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대현자께서 마침내 하늘의 벼락을 다스려 우리에게 밤이 없는 세상을 선사하셨다!”
“이제 밤길에 낙신애 절벽을 보지 못해 떨어질 일은 영원히 없겠구나! 활불 도사님 만세!”
심지어 몇몇 늙은 수선자들은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돗자리를 깔고 밤낮 없는 야간 스트레칭과 가벼운 도인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밤이 밝아지니 범죄율은 물론이고, 야간 낙상 사고율이 문자 그대로 ‘0%’로 수렴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호는 본사 2층 집무실 창문 너머로 이 아름다운 유토피아적 풍경을 바라보며 주판을 튕겼다.
탁, 탁, 타닥.
‘좋아. 야간 상해 보험금 지급 예상 청구액이 지난달 대비 95% 감소했다. 게다가 가로등이 설치된 구역의 주민들에게 매달 징수할 ‘안심 야간 보안 수수료’가 하품 영석 백 개…… 역시 인프라 독점 사업이 최고야.’
지호는 쉰 목소리로 킥킥거리며 따뜻한 녹차를 들이켰다. 가로등의 설치는 단순한 자선 사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성보험의 손해율을 극적으로 방어하는 동시에, 청풍현의 경제적 목줄을 쥐고 흔드는 가장 합법적이고 세련된 금융 공학의 결정체였다.
* * *
하지만 청풍현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을 때, 어둠 속에서 밥그릇이 완전히 박살 난 이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청풍현 북부 슬럼가 깊숙이 자리 잡은 사파 흑응방(黑亡山)의 본거지.
“쾅—!!!”
방주 염도현이 무시무시한 흑응조의 손톱 갈퀴로 탁자를 내리쳐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그의 안대 너머 외눈에는 핏발이 서다 못해 피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
“빌어먹을 서생 놈……! 감히 하늘의 번개를 훔쳐다가 온 동네에 등불을 켜놓아?! 이제 밤인데도 골목길이 대낮처럼 밝으니, 우리 방파의 주 수입원이었던 노상강도와 야간 습격 사업이 완전히 망했다! 강도질을 하려고 골목에 숨어 있으면 가로등 불빛 때문에 얼굴이 다 팔려서 지나가던 꼬맹이도 우리를 보고 비웃는단 말이다!”
염도현의 포효에 지하실에 모인 사파 무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밤이 밝아지자 사채업과 불법 도박장으로 향하던 취객들도 발길을 돌렸고, 야간 암투가 불가능해지니 청풍현의 치안은 선협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 지대로 변모하고 있었다.
“방주님…… 이대로 가다간 다음 달 대하제국 수도의 거대 범죄 조직인 ‘흑풍회(Black Wind Guild)’에 바쳐야 할 상납금을 대지 못합니다. 흑풍회의 규율은 아시지 않습니까? 상납금이 단 1푼이라도 펑크 나면, 당장 저희 목을 베어 낙신애 아래로 던져버릴 것입니다!”
행동대장 사마풍이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속삭였다.
흑풍회.
그 이름이 나오자 지하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흑응방은 청풍현에서 큰소리를 치는 깡패 집단에 불과했지만, 실상은 제국 전체의 지하 경제를 지배하는 초거대 신디케이트 흑풍회의 말단 지부에 불과했다. 상납금 연체는 곧 죽음이었다.
염도현은 이를 갈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서생 놈의 금고를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통째로 털어내지 않으면 우리가 파산한다. 사마풍, 다른 꼼수는 없는가?”
그때, 지하실 구석의 음산한 그림자 속에서 초록빛 피부를 가진 보라색 도포의 사내가 스르륵 기어 나왔다. 온몸에서 썩은 이끼 냄새와 음산한 독기를 풍기는 독공 수련자, 하독성이었다.
“헤헤헤…… 방주님, 너무 조급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서생이 아무리 영리한 대가리를 굴려 가로등을 켜놓았어도, 결국 인간은 물을 마셔야 사는 법이지요.”
하독성이 품속에서 은밀하게 반투명한 보라색 진흙 항아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항아리 마개 틈새로 기분 나쁜 보라색 안개가 실바람처럼 새어 나왔다.
“이것은 제 만독진경의 정수가 담긴 특수 설사독(Laxative Poison)입니다. 무색무취에 영기 감지 진법으로도 걸러지지 않으며, 마시는 즉시 단전의 영기가 꼬이고 사흘 밤낮 동안 똥줄이 타들어가며 설사를 쏟아내게 만드는 절묘한 독이지요.”
염도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사독이라고? 고작 설사 따위로 그 서생의 목을 벨 수 있단 말이냐?”
“크크크, 방주님은 아직 금융의 원리를 모르시는군요.” 하독성이 이빨을 드러내며 음흉하게 웃었다. “최근 그 서생의 신성보험에서 청풍현 주민들과 무사들을 대상으로 출시한 신상품이 있습니다. 단돈 동전 10푼만 내면, 역병이나 질병에 걸렸을 때 치료비와 위로금으로 하품 영석 10개를 무조건 지급한다는 ‘질병 보장 특약’ 말입니다.”
염도현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사파 방주다운 잔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 주민들 대부분이 그 특약에 가입해 있겠군!”
“그렇습니다. 만약 오늘 밤, 청풍현 주민 300명이 매일 아침 마시는 공동 우물에 제가 이 설사독을 미량 살포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일 아침, 온 고을의 무사들과 주민들이 배를 움켜쥐고 쓰러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신성보험 본사로 몰려가 영석 10개씩을 청구하겠지요. 300명이 영석 10개씩이면…… 무려 하품 영석 삼천 개입니다!”
삼천 개.
청풍현 전체를 사고도 남을 거금이자, 신성보험의 금고를 단 하루 만에 완전히 찢어발겨 파산시키고도 남을 파멸적인 액수였다.
“크하하하! 기막힌 계책이구나! 아무리 날고 기는 대현자라 할지라도, 단 하루 만에 삼천 개의 영석 청구서가 들이닥치면 꼼짝없이 파산해 영혼이 소멸할 터!”
염도현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좋다! 하독성, 당장 오늘 밤 행동에 나서라. 가로등이 켜지지 않은 공동 우물 뒤편의 어두운 풍수적 사각지대를 틈타 우물 속에 독을 풀어버려라! 내일 아침, 그 건방진 서생 놈이 똥바람을 맞으며 파산하는 꼴을 똑똑히 감상해 주지!”
“맡겨 주십시오, 방주님.”
하독성은 보라색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그림자 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 * *
깊은 밤, 가로등 불빛이 미처 닿지 않는 청풍현 광장 구석의 공동 우물터.
버드나무 그림자 사이로 검은 복면을 쓴 음산한 인형이 바람처럼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하독성이었다. 그는 야간 순찰대원들의 노란 안전모 불빛이 저 멀리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뒤, 품속에서 보라색 독액 항아리를 천천히 꺼내 들었다.
“크크크…… 어리석은 서생 놈. 하늘을 밝혀도 땅 밑의 물줄기까지 다스리지는 못하는 법이지.”
하독성이 항아리의 마개를 열자, 기괴하고 진득한 보라색 독액이 공동 우물의 맑은 수면 위로 떨어지기 직전의 찰나가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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