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 클리어! 염라대왕을 때리는 안마술
콰아아아아앙—!
하늘을 찢어발기던 핏빛 천겁의 거대한 낙뢰 폭풍이 지나간 만뢰정(萬雷頂) 정상. 사방에는 매캐한 그을음과 탄화된 흙더미가 자욱한 연기가 되어 피어오르고 있었다. 폭풍우는 씻은 듯이 개어갔지만, 제단 위에는 그보다 더 참혹한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콜록! 쿨럭!”
서지호는 그을린 계약서 방탄 도포의 소맷자락을 털어내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맹필두가 수만 장의 폐지 계약서를 압착해 만든 도포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쪽 소매는 흔적도 없이 타버려 재가 되어 날아간 상태였다. 머리카락은 정전기 충격으로 인해 사방으로 부풀어 오른 완벽한 폭탄머리 모양이었고, 오른손목은 감각이 마비되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성대였다. 방금 전 뇌전 폭풍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사자후를 내지른 탓에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 아팠고, 입을 열어도 바람 빠지는 쇳소리만 흘러나왔다.
“……아, 으으.”
지호는 목을 감싸 쥐며 제단 한복판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금색 도포 가슴팍에 시커먼 낙뢰 자국을 선명하게 새긴 채, 대사형 진태양이 대자로 쓰러져 있었다. 황금관은 저 멀리 굴러가 찌그러져 있었고, 그의 온몸에는 미세한 푸른색 전류가 뱀처럼 기어 다니고 있었다.
지호가 가늘게 눈을 뜨고 데스 카운트 스캔(데스 카운트 스캔)을 작동시켰다. 진태양의 이마 위로 핏빛처럼 붉은 홀로그램 숫자가 잔인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진태양 / D-4분 45초 / 사망 원인: 미세 낙뢰 직격으로 인한 심정지 및 가사 상태 (확률 99.9%)]`
‘4분 45초……!’
지호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머릿속의 황금빛 주판알이 미친 듯이 굴러가며 파산 시나리오를 연산해 냈다. 진태양 저 무대포 뇌근육 자살 특공대 새끼가 이대로 죽으면, 신성보험이 유가족에게 지급해야 할 사망 보험금은 무려 하품 영석 오백 개였다. 회사의 전 재산을 털어도 모자라 지호의 영혼까지 탈탈 털려 소멸할 판이었다.
지호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와중에도 곁에서 넋이 나간 채 서 있는 백서연의 덜미를 냅다 잡아당겼. 오른손이 마비되었으니 왼손아귀에 힘을 꽉 쥐었다.
“……윽! 대, 대표님?”
백서연이 깜짝 놀라 지호를 바라보았다. 지호는 검게 그을린 폭탄머리를 사정없이 흔들며, 제단 아래를 향해 왼손으로 미친 듯이 손짓을 했다. 입술을 벌려 “김…… 철…… 수……!” 하고 소리쳤지만, 새어 나오는 것은 바람 빠지는 소리뿐이었다.
“대사형이…… 대사형의 숨이 멎었습니다! 어찌합니까, 대표님!”
백서연이 쓰러진 진태양의 코밑에 손을 대보고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 비명을 질렀다. 연무장 아래에서 대기하던 청풍문 제자들도 제단 위를 바라보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진태양의 죽음은 문파의 기둥이 꺾이는 비극이었지만, 지호에게는 당장 내일 아침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금융적 종말이었다.
“비켜! 당장 비켜라!”
그 순간, 만뢰정 제단 아래 산길을 뚫고 웬 사내 하나가 헐떡거리며 미친 듯이 뛰어 올라왔다. 하얀 의원 도포를 바람에 휘날리며, 한 손에는 묵직한 구급 상자를 들고 안경을 치켜올리는 사내. 지호가 전폭적으로 재정을 지원해 설립한 신성 종합 의원의 원장이자, 지호의 유일한 전생 동료인 한의사 김철수였다.
철수는 산 아래에서 기상 관측을 하던 중, 피뢰 우산이 폭발하며 미세 낙뢰가 진태양을 직격하는 것을 목격하고 구급 상자를 짊어진 채 폭풍 질주해 온 것이었다.
“지호야! 진태양 상태는 어때!”
지호는 대답 대신 진태양의 가슴팍을 왼손으로 거칠게 가리켰다. 철수는 제단 위로 뛰어오르자마자 진태양의 목덜미에 손가락을 대어 맥박을 측정했다.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고 예리하게 가라앉았다.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의사로서의 본능이 각성하는 순간이었다.
“맥박 소실. 자가 호흡 없음. 완전한 가사 상태(Near-Death)다. 골든타임은 앞으로 4분 내외야!”
철수는 지체 없이 구급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현대 의학의 산물과 선협 세계의 영기 공학이 절묘하게 결합한 구급 도구들이 정갈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철수가 가장 먼저 꺼낸 것은 투명한 가죽 주머니와 구리 밸브가 장착된 영석 충전식 인공호흡기였다.
“지호야! 네 목소리가 안 나오니 몸으로 때워라! 내 왼손으로 이 마스크를 진태양의 코와 입에 밀착시켜! 그리고 내가 지시하는 박자에 맞춰 이 가죽 주머니를 꾹꾹 눌러라! 분당 열두 번이다, 알겠어?”
지호는 고개를 폭풍처럼 끄덕였다. 마비된 오른손을 가슴팍에 고정해 둔 채, 왼손으로 인공호흡기 마스크를 움켜쥐고 진태양의 얼굴에 강하게 밀착시켰다. 그리고 다른 한 손과 이빨을 동원해 가죽 펌프를 규칙적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푸쉭, 푸쉭—!
인공호흡기 내부의 영석 밸브가 회전하며, 정화된 순수한 공기와 미세한 영기가 진태양의 폐부 깊숙한 곳으로 강제로 주입되었다. 진태양의 가슴이 인위적으로 부풀어 올랐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
그사이 철수는 구급 상자 깊은 곳에서 황금빛 글씨가 촘촘히 새겨진 노란색 부적 두 장을 꺼냈다. 백운도사가 뇌전의 미세 전류를 제어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심장 제세동 영기 부적이었다.
“백서연 소저! 대사형의 상체를 단단히 붙잡으시오! 뇌전 충격이 가해질 때 몸이 크게 튈 수 있으니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
“예, 예! 의원님!”
백서연이 침을 꿀컥 삼키며 진태양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철수는 제세동 부적 두 장을 진태양의 가슴 양쪽에 팍 붙였다. 부적이 닿는 순간, 진태양의 가슴팍에서 지직거리는 미세한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철수가 전생의 응급실 인턴 시절 몸에 익혔던 우렁찬 구령을 선협식으로 내질렀다.
“비켜! 클리어(Clear)—!!!”
철수가 손끝으로 영력을 주입하자, 제세동 부적이 황금빛으로 번쩍이며 순간적으로 강력한 정전기 충격을 진태양의 가슴에 직격했다.
콰과광—!
“윽!”
진태양의 거구의 신체가 제단 바닥에서 일 미터쯤 붕괴하듯 펄쩍 튀어 올랐다. 가슴을 붙잡고 있던 백서연마저 그 충격파에 밀려 뒤로 주춤할 정도였다. 진태양의 신체가 털썩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의 이마 위 타이머는 여전히 무정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D-3분 15초]`
“맥박 여전히 없음! 심실세동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지호야, 인공호흡 멈추고 당장 흉부 압박 들어가!”
철수의 외침에 지호는 지체 없이 진태양의 가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오른손목이 마비되어 힘이 들어가지 않자, 지호는 왼손을 아래로 내리고 그 위에 마비된 오른손을 겹쳐 올린 뒤 체중을 실었다.
김철수가 신성 종합 의원 구조대원들에게 매일 밤 스파르타식으로 주입했던 심폐소생술 및 응급처치 프로토콜(심폐소생술 및 응급처치 프로토콜)의 동작이었다.
‘하나, 둘, 셋, 넷……!’
지호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진태양의 흉골 정중앙을 5센티미터 깊이로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초고속 흉부 완충 압박(초고속 흉부 완충 압박)이었다.
뚝, 뚝—!
진태양의 단단한 흉골과 갈비뼈가 압박의 충격으로 인해 삐걱거리며 휘어지는 기괴한 소리가 제단 위에 울려 퍼졌다. 전투력 0인 지호가 일류 무사의 단단한 신체를 누르기 위해 전신 체중을 실어 내리누를 때마다, 지호의 왼손바닥에는 붉은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고 타버린 도포 자락 사이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연무장 아래에서 이 광경을 숨죽이고 지켜보던 청풍문 제자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저, 저게 무슨 짓이냐! 대현자께서 대사형의 시신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계신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대사형이 천겁에 실패해 죽자 분풀이를 하시는 것인가?!”
제자들이 웅성거리며 칼자루에 손을 올리려 하자, 백서연이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향해 벽력을 질렀다.
“모두 조용히 하라! 어리석은 놈들! 눈이 있으면 똑똑히 보아라! 대현자께서 지금 대사형의 흩어지려는 영혼을 육신 안으로 억지로 밀어 넣기 위해 신비한 고대의 안마술을 시전하고 계신 것이다!”
“안마술…… 이라고요?”
“그렇다! 저것은 저승의 염라대왕이 작성한 명부를 찢어발기고 영혼을 강제로 붙잡아 두는 구혼(求魂)의 비기다! 한 번만 더 무례한 소리를 지껄이는 자는 내 검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백서연의 광신적인 일갈에 제자들은 침을 꿀컥 삼키며 다시 제단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지호가 땀을 흘리며 진태양의 가슴을 쾅쾅 내리누를 때마다, 진태양의 몸 주변으로 황금빛 영기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사실 지호가 압박할 때마다 진태양의 체내에 남아 있던 태양진화결의 잔류 영기가 강제로 순환하며 비산하는 물리적 현상일 뿐이었지만, 수선자들에게는 신비로운 소생 무공의 극의로 자동 해석되고 있었다.
`[D-2분 10초]`
지호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허우적거렸다. 양팔 근육이 완전히 파열될 것 같은 극심한 피로가 밀려왔다.
‘이 뇌근육 새끼야…… 제발 눈 좀 떠라! 네가 죽으면 내 오백 영석이 날아간다고! 내 영혼도 파산해서 저승사자랑 면담해야 한단 말이다!’
지호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와중에도, 쓰러진 진태양의 귀에 대고 속사포 같은 초고속 면책 조항 낭독(초고속 면책 조항 낭독)을 쉰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가입자 진태양…… 약관 제14조 2항…… 천겁 돌파 시 고의 혹은 과실로 인한 자해 및 장비 미착용으로 발생한 상해는……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며…… 귀하가 사망할 시…… 유가족에게 지급될 위로금은 단 1푼도 없음을…… 사전 고지합니다…… 그러니까…… 죽으면 너만 손해라고 이 바보 새끼야…… 당장 일어나……!”
쉬어버린 목소리로 읊어대는 끈질기고 시끄러운 약관 소리가 진태양의 귓전을 때렸다. 실제로 저승 길목의 황천강 다리 앞까지 걸어가고 있던 진태양의 영혼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돈 못 준다”, “약관 위반이다”라는 지독하게 세속적이고 시끄러운 웅얼거림에 황당함을 느끼고 발걸음을 멈칫했다.
그사이 김철수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철수의 안경 너머 눈동자에 서서히 붉은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그의 뇌리에는 전생의 기억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한국에서 응급실 인턴 시절, 자신의 사소한 판단 실수로 인해 여덟 살짜리 꼬마 환자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지 못했던 그날의 차가운 수술대 감촉. 그 죄책감과 트라우마가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철수는 이를 악물며 구급 상자에서 두 번째 제세동 부적을 꺼냈다. 그의 온몸에서 의학 기공인 태을의 침경 영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
“지호야…… 나 한국에선 한 명을 놓쳤어. 매일 밤 그 아이의 얼굴이 꿈에 나와 나를 괴롭혔지. 하지만 이 세계에선…… 내 가입자는, 내 환자는 절대 단 한 명도 안 보낸다! 염라대왕이 아니라 천도가 직접 데려가려 해도 내 손으로 가슴을 찢어서라도 붙잡아 둘 거야!”
철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이타적인 집착과 지호의 세속적인 파산 공포가 역설적으로 완벽한 공명을 이루며 제단 위를 가득 채웠다.
철수가 진태양의 가슴에 부적을 다시 팍 밀착시켰다.
“비켜! 클리어(Clear)—!!!”
콰과과과광—!!!
이전보다 두 배는 강력한 황금빛 뇌전 스파크가 진태양의 가슴을 관통했다. 진태양의 신체가 공중으로 높이 튀어 올랐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호가 자신의 전 체중을 실어 왼손바닥으로 진태양의 흉골을 마지막 힘을 다해 쾅 내리눌렀다.
“당장 깨어나—!!!”
지호의 성대에서 피 냄새와 함께 찢어지는 듯한 마지막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찰나의 순간, 만뢰정 정상에 완벽한 침묵이 찾아왔다. 바람도, 빗방울도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지호의 눈앞에 있는 데스 카운트 스캔 타이머가 `[D-3초…… D-2초……]`를 가리키며 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파지직.
진태양의 검게 그을린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컥!!!”
진태양이 갑자기 상체를 90도로 꺾으며 벌떡 일어났다. 그의 입에서 시커먼 그을음 연기가 폭포처럼 뿜어져 나왔다. 풀렸던 동공이 순식간에 수축하며 맑은 태양의 안광이 돌아왔다. 멈췄던 심장이 ‘쿵쾅! 쿵쾅!’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지호의 눈앞에 빨갛게 깜빡이던 데스 카운트 타이머가 순식간에 휘날리며 사라지고, 눈부신 황금빛 숫자가 선명하게 재표기되었다.
`[진태양 / D-60년 / 사망 원인: 노환 (확률 98%)]`
소생 대성공이었다.
“하아…… 하아…….”
진태양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가슴뼈가 으스러질 듯 아팠지만, 전신에 흐르는 내공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단단하게 축기(築基)의 경지를 완성하고 있었다.
진태양은 멍하니 제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머리가 정전기로 폭탄처럼 부풀어 오른 채, 타버린 도포를 입고 땀과 피눈물로 범벅이 된 지호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안경을 쓴 채 눈물을 흘리며 숨을 헐떡이는 김철수 의원이 서 있었다.
진태양은 자신이 방금 전 저승의 황천강 다리 앞에서 도사님의 시끄러운 약관 잔소리에 빡쳐서 발길을 돌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도사님……!”
진태양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제단 바닥을 기어와 지호의 숯검댕이가 된 바지 가랑이를 꽉 움켜쥐었다.
“도사님께서…… 제 영혼이 저승으로 흘러가려는 순간, 직접 염라대왕의 멱살을 잡고 명부를 찢어발기며 저를 구해오신 것이군요! 이 위대한 안마술의 은혜를 어찌 잊으리오! 저 진태양, 오늘부로 도사님을 제 평생의 수호신이자 대현자로 모시겠습니다!”
“……아, 으으 (이 바보 새끼야, 바지 놔라)…….”
지호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속으로만 비명을 지르며 진태양의 머리를 왼발로 툭툭 밀어냈다. 하지만 제단 아래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의 청풍문 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단체로 제단 아래에 무릎을 꿇으며 엎드렸다.
“염라대왕의 장부를 찢은 활불 도사님이시다!”
“신성보험 만세! 활불 도사님 만세!”
온 산이 떠나가라 외치는 광신적인 숭배 소리가 만뢰정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지호는 부풀어 오른 폭탄머리를 긁적이며, 내일부터 본사 사무실에 들이닥칠 미친 가입자들의 행렬과 마비될 행정 업무를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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