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려 나간 구리선과 야매 접지 이론
“이 미친 뇌근육 새끼야! 당장 거기서 내려오라고!”
폭풍우가 고막을 찢어발길 듯 울려 퍼지는 만뢰정(萬雷頂) 정상. 서지호는 마비되어 굳어가는 오른팔로 피뢰 우산을 움켜쥔 채 제단을 향해 절규했다. 온몸을 적시는 빗물보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더 차가웠다.
저 멀리 석조 제단 위에는 청풍문의 대사형, 진태양이 화려한 금색 도포를 펄럭이며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의 무릎 위에 놓인 화염 보검이 붉은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지호의 눈에 그것은 그저 ‘곧 불타 사라질 오백 영석짜리 고액 사망 보험 청구서’로 보일 뿐이었다.
지호가 가늘게 눈을 뜨고 진태양을 응시하자, 붉은색 타이머가 사정없이 깜빡였다.
`[진태양 / D-4분 / 사망 원인: 변종 천겁 직격으로 인한 전신 탄화 및 영혼 소멸 (확률 99.99%)]`
4분. 정확히 240초 뒤면 신성보험은 개업 한 달 만에 천문학적인 부채를 떠안고 공중분해 될 판이었다. 파산은 곧 지호의 영혼 소멸을 의미했다.
“하하하! 서생이여, 천도의 위대한 시험을 방해하지 마라!”
진태양이 폭풍우를 뚫고 오만하게 포효했다. “내 몸 안의 태양진화결이 하늘의 뇌전 기운을 갈구하고 있다! 오늘 나는 맨몸으로 이 번개를 받아내어 축기의 경지를 증명할 것이다!”
“증명은 개뿔! 느그 대가리가 초전도체냐고! 피뢰침도 없이 그걸 맞으면 증명이 아니라 즉석 숯불구이가 되는 겁니다, 고객님!”
지호는 비명을 지르며 제단 옆에 굳건히 서 있는 고정식 대형 대지 피뢰침 탑의 기단부로 달려갔. 맹필두 어르신과 함께 산꼭대기에 세워둔 30미터짜리 거대 철탑이었다. 이 피뢰침만 정상 작동한다면 하늘의 벼락을 강제로 땅속으로 방류해 진태양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피뢰침 기단의 진법 제어반을 열어젖힌 순간, 지호의 사고 회로가 턱 막혔다.
“……이게 뭐야?”
제어반 내부의 영기 회로가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은빛으로 빛나야 할 영기 도선들이 음산한 보라색 불꽃을 뿜으며 역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번개를 흡수해야 할 회로가 오히려 번개 에너지를 한곳으로 응축시켜 대폭발을 일으키도록 역전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피뢰침의 핵심인 고순도 구리 도선이 무언가에 의해 날카롭게 잘려 나가 있었다. 단면에는 거친 쇠톱날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쇠톱질……? 사마풍(사마풍) 이 쥐새끼 같은 테러범 새끼가 장비를 쇠톱으로 잘라놨어! 게다가 이 조잡하고 음험한 역전 회로는 구양수(구양수) 그 타락한 진법가 늙은이의 솜씨잖아!”
지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염도현과 흑응방 놈들이 신성보험을 파산시키기 위해 기획한 ‘피뢰침 에너지 역전 테러’의 전말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들은 지호가 설치한 물리적 안전장치를 폭탄으로 개조해 둔 것이었다.
남은 시간은 이제 3분.
하늘의 핏빛 먹구름이 제단을 향해 깔때기 모양으로 소용돌이치며 하강하기 시작했다. 대기 중의 전압이 급격히 상승하며 지호의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대표님! 제가 저 회로를 검으로 베어버리겠습니다!”
뒤따라온 백서연이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그녀의 눈에는 지호가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대현자로 보이고 있었다.
“안 돼요! 저건 전류가 흐르는 고압 회로라고요! 칼을 대는 순간 서연 씨까지 전신 마비로 즉사합니다!”
지호는 황급히 백서연을 만류했다. 무공을 모르는 지호였지만, 전생에 보험 설계사로 일하며 잡다하게 주워들었던 전기 안전 상식만큼은 확실했다. 회로가 역전되었다면, 물리적으로 역전 부적을 제거하고 도선을 직접 땅속 접지선에 강제로 연결하는 ‘야매 접지’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지호는 이를 악물고 제어반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구양수가 설치한 음산한 보라색 역전 우회 부적이 회로 중앙에 끈적하게 붙어 있었다.
맨손으로 만지면 즉사다. 지호는 자신이 입고 있는 계약서 방탄 도포의 소맷자락을 길게 늘려 손을 감쌌. 맹필두가 수만 장의 폐지 계약서를 압착해 만든 도포는 훌륭한 절연체 역할을 해줄 터였다.
“춘삼 증조부님! 백 개! 영석 백 개 공양할 테니까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지호는 에어백 고정용 가마솥 닻에 깃들어 있는 증조부 서춘삼(서춘삼)의 영혼을 향해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그 순간, 도포 소매 끝자락에서 미세한 푸른빛이 흘러나오며 절연의 인장력이 극대화되었다. 지호는 거침없이 손을 뻗어 역전 우회 부적을 팍 뜯어냈다!
파지지지직—!
“아아악!”
엄청난 정전기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절연 도포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잔류 전류의 충격파가 지호의 전신을 강타했다.
지호의 머리카락이 순간적으로 사방으로 뻗치며 완벽한 폭탄머리 모양으로 부풀어 올랐고, 귀에서 미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오른팔의 마비 증세가 왼쪽 어깨까지 번져 찌릿찌릿 감각이 사라졌다. 염라대왕과 강제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온 듯한 아찔한 감각에 무릎이 꺾일 뻔했다.
“대표님!”
백서연이 비명을 지르며 지호를 부축하려 했으나, 지호는 이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손을 저었다.
“으, 으으…… 나, 나 괜찮아요. 아직 오백 영석이 안 날아갔어…….”
지호는 가죽 가방을 왼손으로 뒤적였다. 다행히 기술 조수 강철민(강철민)이 대장간을 떠나기 전 “혹시 모릅니다, 사장님”이라며 쥐여주었던 고순도 구리 도선 조각이 잡혔다. 잘려 나간 피뢰침 도선 양끝을 연결할 유일한 전도체였다.
하지만 잘려 나간 도선의 간격이 너무 넓었다. 구리선 조각만으로는 제단 아래의 지하 접지선까지 닿지 않았다. 지호의 눈이 제단 아래 바위틈에 단단히 박혀 있는 가마솥 고철 닻으로 향했다.
가마솥 닻은 땅속 깊은 곳의 천겁석(천겁석) 광맥 기단과 직접 맞닿아 있었다. 저 가마솥에 구리선을 연결하면 지상의 벼락 에너지를 지하의 천겁석 광맥으로 직접 방류하는 ‘대지 접지’가 완성된다!
바람 소리가 너무 거세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지호는 구리로 만든 메가폰 확성기를 입에 대고 영기를 살짝 실어 외쳤다. 확성기식 영기 사자후(확성기식 영기 사자후)의 시전이었다.
“백서연 고객님! 당장 저 아래 가마솥 닻을 바위틈에 더 깊숙이 박아 넣으세요! 흔들리면 우리 둘 다 공중분해 됩니다! 어서요!”
지호의 목소리가 폭풍우를 뚫고 쩌렁쩌렁하게 만뢰정 전체에 울려 퍼졌다. 너무 무리하게 소리를 지른 탓에 지호의 성대에서 피 맛이 돌며 일시적으로 목소리가 차단되었다.
백서연은 지호의 절박한 외침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감격을 느꼈다.
‘대표님은 정전기에 온몸이 타들어가면서도, 오직 대사형과 나를 살리기 위해 저 무거운 닻을 고정하라 하시는구나! 이 어찌 눈물겨운 대자비란 말인가!’
“예! 대표님! 제 목숨을 걸고 고정하겠습니다!”
백서연이 청풍 비검의 자루로 가마솥 닻을 내리치며 내공을 쏟아부었다. 쾅! 쾅! 소리와 함께 가마솥 닻이 바위틈 깊숙한 곳으로 쐐기처럼 완전히 박혀 들어갔다.
그 순간, 가마솥 표면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플레어처럼 피어올랐다. 가마솥에 깃든 증조부 서춘삼의 영혼이 영석 백 개의 공양 약속에 반응하여 신비로운 영력으로 닻의 균형을 단단히 잡아준 것이었다. 닻은 이제 그 어떤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절대적인 고정 상태가 되었다.
“조, 좋아…… 이제 연결만 하면…….”
지호는 마비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고순도 구리 도선의 한쪽 끝을 잘려 나간 피뢰침 기단에 칭칭 감았다. 그리고 남은 도선 자락을 질질 끌고 가, 바위틈에 박힌 가마솥 닻의 손잡이에 쇠줄과 함께 묶어 단단히 고정했다.
구리선과 가마솥 닻, 그리고 땅속 천겁석 광맥을 잇는 야매 접지 회로가 마침내 수직으로 완성되었다.
`[D-10초]`
지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은색 타이머가 눈앞에서 격렬하게 깜빡이며 제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하늘 전체가 핏빛으로 붉게 타오르며, 수만 볼트의 변종 천겁 벼락 본류가 거대한 기둥 모양으로 응축되어 제단을 향해 낙하를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대지가 비명을 지르듯 진동했다. 지호는 급히 몸을 날려 백서연을 끌어안고 바위 뒤로 엎드렸다.
그 찰나, 거대한 천겁의 본류가 만뢰정 정상을 직격했다.
콰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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