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보험금을 들고 번개 속으로 뛰지 마라
“오백 영석…… 오백 영석이 날아간다!”
지호는 두절된 전음패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청풍현 남문 거리를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파산 선고를 내리는 법관의 의사봉 소리가 쾅, 쾅, 쾅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진태양 저 대책 없는 대사형 놈이 만뢰정 꼭대기에서 타버린 숯덩이가 되는 순간, 신성보험은 개업 한 달 만에 공중분해 될 판이었다. 오백 영석이면 청풍현 전체를 세 번은 사고도 남을 거금이다. 전생에 한국에서 실적에 목숨 걸던 7년 차 보험 설계사의 직업병적 본능이 지호의 전신을 지배했다. 돈이 날아가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번개와 맞짱을 뜨는 게 속이 편할 지경이었다.
“대표님! 같이 가십시다!”
노란색 ‘충격 완충 안전 헬멧’을 쓴 백서연이 청풍 비검을 비껴든 채 지호의 뒤를 바짝 따랐.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는 지호를 향한 광신적인 숭배의 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대표님은 정녕 대사형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 천재지변 속으로 몸을 던지시는군요! 역시 생명을 천하의 그 어떤 보물보다 무겁게 여기시는 위대한 대현자이십니다!”
“서연 씨, 제발 오해하지 마세요! 난 저 새끼 목숨이 아까운 게 아니라 내 금고가 찢어지는 게 아까워서 달리는 겁니다! 진태양 저 인간이 죽으면 나 진짜 한강 가야 한다고요!”
지호가 헐떡이며 진심 어린 비명을 질렀지만, 백서연은 그저 감격에 젖어 고개를 세차게 흔들 뿐이었다.
“구차한 세속의 가치로 자신의 자비를 포장하려 하지 마십시오! 제 눈에는 다 보입니다!”
“아니, 진짜라니까?! 내 눈엔 지금 오백 영석짜리 거대 지폐가 만뢰정 꼭대기에서 불타고 있는 걸로 보인다고!”
두 사람은 빗발이 치기 시작한 청풍현 골목을 번개처럼 가로질러 맹필두의 대장간 안으로 거칠게 들이닥쳤다.
쾅—!
“맹 감독님! 장비! 당장 그 장비 내놓으세요!”
대장간 내부에는 이미 화로의 열기와 정전기가 뒤섞여 묘한 불꽃이 튀고 있었다. 산발을 한 흰머리의 츤데레 장인 맹필두가 붉게 달아오른 철판을 망치로 내리치다 말고 지호를 향해 호통을 쳤다.
“이 빌어먹을 서생 놈이 또 무슨 난리냐! 썩 꺼지지 못해! 지금 천겁의 기운 때문에 화로 온도가 제멋대로 널뛰고 있단 말이다!”
“그 천겁 때문에 제 목숨줄이 끊어지게 생겼습니다! 저번에 말씀드린 그 우산이랑 도포, 완성됐죠? 당장 내놓으세요!”
맹필두는 혀를 쯧 차며 대장간 구석의 나무 상자에서 낡고 묵직한 회색 도포 한 벌과, 우산살 끝마다 구리 도선이 징그럽게 얽혀 있는 기묘한 우산 하나를 꺼내 던졌다.
“가져가라! 네놈이 준 폐지 계약서 수천 장을 압착해서 만든 ‘계약서 방탄 도포’다. 그리고 이건 네놈의 해괴망측한 도면을 바탕으로 내가 밤새 주조한 ‘휴대용 피뢰 안전 우산’이고! 하지만 경고하마. 이건 번개를 피하는 물건이 아니라, 번개의 힘을 우산 끝으로 강제로 빨아들여 손잡이에 가두는 미친 물건이다! 자칫 접지가 잘못되면 네놈 손목이 통째로 날아갈 게야!”
“손목이 날아가는 게 파산하는 것보다 백배는 낫습니다!”
지호는 지체 없이 계약서 방탄 도포를 몸에 걸쳤다. 수천 장의 무효 계약서 종이를 압착해 제련한 도포는 뻣뻣하면서도 기묘한 인장력을 풍겼다. 이어 휴대용 피뢰 안전 우산을 등 뒤에 짊어진 지호는 만뢰정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만뢰정으로 오르는 산길은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하늘은 완전히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웅장한 천둥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산길 위로 흙더미와 거대한 바위들이 사정없이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대표님, 위험합니다!”
백서연이 기합을 넣으며 앞으로 도약했다. 그녀의 청풍 비검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색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굴러떨어지던 집채만 한 바위를 순식간에 잘게 으스러뜨렸다. 사방으로 튀는 돌가루를 계약서 방탄 도포의 질긴 종이 마찰력이 완벽하게 차단해 냈다.
“서연 씨! 나이스 샷! 아주 훌륭한 과실 방어 운전이었어요!”
지호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소리쳤다. 백서연은 빗속에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다시 한번 감격 어린 눈빛으로 지호를 보았다.
“대표님을 호위하는 일이라면 제 영혼을 바쳐도 아깝지 않습니다!”
“아니, 영혼까지 바치진 마세요! 고객님의 영혼 손상은 보험금 청구 대상이 아니라서 제가 보상해 드릴 수 없습니다!”
산길을 반쯤 올랐을 때, 하늘의 뇌전 기운이 극도로 응축되며 사방에서 지호의 머리 위로 잔가지 번개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파지직, 파직!
“앗 뜨거!”
순간 지호가 비명을 질렀다. 달리는 도중 정전기 마찰로 인해 도포 안쪽의 일반 속옷 자락에 불이 붙은 것이었다. 지호는 황급히 불타는 옷자락을 뜯어내 버리고, 맹필두가 준 계약서 방탄 도포를 몸에 더욱 단단히 감싸 쥐었다. 신기하게도 방탄 도포 표면에 새겨진 약관 문양들이 미세하게 빛나며 주변의 정전기 스파크를 튕겨내고 있었다.
그때, 지호의 머리 위로 굵직한 낙뢰 한 줄기가 수직으로 내리꽂혔. 콰앙—!
“으아악! 접지 가동!”
지호는 본능적으로 등 뒤의 휴대용 피뢰 안전 우산을 펼쳐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우산이 펴지는 순간, 우산살 끝에 촘촘히 얽혀 있던 고순도 구리 도선들이 푸른빛을 발하며 대기 중의 번개를 강제로 끌어당겼다. 찌리리리릿! 거대한 뇌전 에너지가 우산 끝으로 흡수되어 샤프트를 타고 내려와, 손잡이 끝에 장착된 빈 하품 영석 내부로 송전되었다.
화아아악!
우산 손잡이가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지호가 끼고 있던 가죽 장갑이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재가 되어 날아갔고, 오른손목에 찌릿한 마비와 함께 가벼운 화상이 찾아왔다. 하지만 우산 손잡이 속의 빈 영석은 뇌전 에너지를 가득 머금은 채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초고가 ‘천겁석’ 배터리로 변해 있었다.
“살았다…… 진짜 작동하잖아, 이거!”
지호는 마비된 오른손을 벌벌 떨며 우산을 고쳐 잡았다. 맹필두의 현대식 전도율 설계가 선협 세계의 물리 법칙을 완벽하게 이겨낸 순간이었다.
“대표님! 저기 대사형이 보입니다!”
백서연의 외침에 지호가 고개를 들었다.
만뢰정 정상의 넓은 석조 제단 위, 화려한 금색 도포를 입은 진태양이 가부좌를 튼 채 화염 보검을 무릎 위에 얹고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리 위 하늘에는 핏빛으로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번개 소용돌이가 하강을 준비하며 웅웅거리고 있었다. 진태양의 얼굴에는 자신이 천도를 극복하고 영광을 차지하겠다는 뇌근육 특유의 오만한 미소가 만연했다.
지호는 숨을 들이쉬며 가늘게 눈을 뜨고 진태양을 응시했다. 데스 카운트 스캔 가동.
위이이잉—!
지호의 안구 속에 미세한 황금빛 주판알들이 회전하며, 진태양의 머리 위로 핏빛 디지털 숫자가 번쩍이기 시작했다.
`[진태양 / D-5분 / 사망 원인: 변종 천겁 직격으로 인한 전신 탄화 및 영혼 소멸 (확률 99.99%)]`
“D-5분! 야, 이 미친 대사형 새끼야! 당장 그 제단에서 내려와!”
지호가 마비된 오른팔로 피뢰 우산을 꽉 쥔 채, 붉은 번개가 요동치는 제단을 향해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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