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겁의 제삿날, 그리고 보이지 않는 쇠톱
낙신애 절벽 아래, 독고 가문의 가주 독고성을 밧줄로 꽁꽁 묶어 리어카에 처박은 서지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방금 전 뇌근육 꼰대 가문을 안전 몽둥이와 에어백의 탄성 프레임으로 참교육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기쁨을 만끽할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쿠구구구구—!
대지를 뒤흔드는 음산한 천둥소리와 함께, 청풍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만뢰정(萬雷頂)의 하늘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소용돌이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번개 줄기들은 흡사 성난 용의 이빨 같았다. 대기 중에 가득 찬 정전기 때문에 지호의 낡은 도포 자락이 찌릿찌릿 소리를 내며 사정없이 흩날렸다.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진짜 큰일 났어요!”
그때, 청풍문의 하급 제자 하나가 연무장 쪽에서 허둥지둥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려왔다. 얼마나 다급하게 달렸는지 노란색 충격 완충 안전 헬멧이 삐딱하게 돌아가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설마 가입자 중에 또 절벽에서 맨몸으로 다이빙한 블랙컨슈머가 나온 겁니까?”
지호가 확성기를 고쳐 잡으며 묻자, 제자는 침을 꿀컥 삼키며 만뢰정 정상 쪽을 가리켰다.
“대, 대사형이 미쳤습니다! 진태양 사형이 지금 당장 만뢰정 꼭대기에서 천겁을 맞이해 축기기(築基期)로 돌파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지금 문파 제자들을 거느리고 산을 오르고 있어요!”
“뭐라고요? 진태양 고객님이?”
지호의 머릿속에서 황금빛 주판알이 광란의 속도로 튕겨 나가며 자본주의적 파산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진태양…… 청풍문의 대사형이자 우리 신성보험 청풍본점의 초고위험군 VIP 가입자! 그 인간이 사망할 시 우리 회사가 지급해야 할 사망 보장금이 무려 하품 영석 오백 개다! 오백 개라고! 지금 우리 회사 영석 준비금 금고를 통째로 털어도 모자란 금액이란 말이다!’
전투력 제로인 평범한 현대 한국의 7년 차 보험 설계사 출신 지호에게 있어, 가입자의 사망은 곧 자신의 영혼 파산이자 소멸을 의미했다. 더군다나 상대는 대책 없이 용감하고 자존심만 하늘을 찌르는 뇌근육의 표본, 진태양이었다.
“당장 연무장으로 갑니다! 패서라도 끌어내려야 해요!”
지호는 찢어진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청풍문 연무장으로 폭풍 질주했다. 그의 양옆으로 수석 안전 요원 백서연과 거구의 구조대장 곽두팔이 노란 헬멧을 번쩍이며 뒤따랐.
* * *
청풍문 연무장은 이미 축제와 광기의 도가니였다.
“오직 번개만이 사내의 끓는 피를 증명하는 법! 하늘의 세례를 받고 나는 오늘 진정한 강자로 거듭나리라!”
화려한 금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 황금관을 쓴 진태양이 연단 위에서 화염 보검을 치켜들며 포효하고 있었다. 주변의 제자들은 “대사형! 천하제일!”을 외치며 맹목적인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무런 방어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백만 볼트짜리 천겁의 번개를 맞겠다는 미친 짓을, 이 세계의 수선자들은 ‘무사의 기상’이라 부르며 칭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태양 고객님! 당장 그 칼 내려놓고 제단에서 내려오세요!”
지호가 확성기를 입에 대고 쩌렁쩌렁한 사자후를 토해냈다. 연무장의 환호성이 순간적으로 뚝 끊기며 제자들의 시선이 지호에게 집중되었다.
진태양이 눈살을 찌푸리며 지호를 내려다보았다.
“서생이여,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기어나왔는가? 나는 오늘 천도를 찢고 축기(築基)의 경지에 오를 것이다. 내 위대한 돌파를 방해하지 마라!”
“돌파는 무슨 얼어 죽을 돌파입니까! 진태양 고객님, 약관 제14조 2항을 잊으셨습니까?”
지호가 품속에서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한 가죽 계약서 뭉치를 꺼내 흔들었다.
“신성보험의 공식 조례이자 현령 어른의 공인 하에 발포된 ‘천겁 사전 등록제’에 따르면, 벼락을 맞아 돌파를 시도하려는 수선자는 최소 3일 전에 관청과 신성보험에 일시, 장소, 예상 전압을 서면으로 신고해야 합니다! 귀하는 사전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으므로, 오늘 밤의 천겁 돌파는 명백한 ‘무단 전력 도용죄’ 및 ‘공공질서 교란죄’에 해당합니다! 당장 내려와서 서류부터 쓰세요!”
“무단 전력 도용이라니! 하늘의 번개가 어찌 관청과 네놈의 소유란 말이냐!”
진태양이 황당하다는 듯 소리치자, 지호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더욱 단호하게 뼈를 때렸다.
“천겁의 번개는 청풍현 영토 내의 대기를 매개로 낙하하므로 관청의 행정 관할 구역에 속합니다! 그리고 미신고 상태에서 벼락을 맞다가 주변 가옥을 태우거나 산불을 내면, 공공 기물 파손죄로 관청 지하 감옥에 수감될 수 있습니다! 느그 대가리가 초전도체라도 됩니까? 피뢰침도 없이 맨몸으로 번개를 받겠다니, 이건 용기가 아니라 지독한 안전 불감증이자 자살 특공입니다!”
“시끄럽다! 무인은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법! 벼락 따위, 내 태양진화결의 기운으로 삼켜버리면 그만이다!”
진태양이 코방귀를 뀌며 화염 보검을 휘둘렀다. 그의 뇌근육 사상은 지호의 합리적인 세법과 안전 규정 따위로는 쉽게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했다.
그때였다.
“대,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단순한 천겁이 아닙니다!”
기상 관측원 임호선이 깃털 부채를 내팽개치고 청동 풍향계와 관측반을 손에 쥔 채 연무장 한복판으로 허둥지둥 뛰어들어왔다. 그의 안색은 흑망산의 안개보다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호선 씨, 진정하고 보고하세요. 대기 전압 수치가 어떻습니까?”
지호가 묻자, 임호선은 떨리는 손으로 관측반의 수치를 가리켰다.
“지금 만뢰정 꼭대기에 모여드는 먹구름의 밀도와 영기 왜곡 수치가 일반 천겁의 최소 다섯 배를 초과하고 있습니다! 이건 대자연의 순리가 아닙니다. 인위적으로 뇌전의 분노를 극대화하는 사악한 촉매제…… 흡사 금지된 영약인 ‘혈뢰단’의 성분이 공기 중에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번개가 치면 만뢰정 전체가 증발할 것입니다!”
‘뭐라고? 다섯 배?!’
지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변종 천겁이라니. 이건 자연재해가 아니라 명백한 기획 테러의 냄새가 풍겼다.
지호는 즉시 가늘게 눈을 뜨고 진태양의 이마를 응시했다. 데스 카운트 스캔(Death Count Scan) 가동.
위이이잉—!
지호의 눈동자 속에 황금빛 주판알과 소수점 통계 그래프가 빠르게 회전하며, 진태양의 머리 위로 시뻘건 디지털 숫자가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진태양 / D-3시간 / 사망 원인: 변종 천겁 직격으로 인한 전신 탄화 및 영혼 소멸 (확률 99.99%)]`
“D-3시간?! 전신 탄화?!”
지호는 숨이 턱 막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수명이 고작 세 시간 남았다니. 그것도 그냥 죽는 게 아니라 영혼까지 타버려 재가 된다는 경고였다. 진태양이 저 상태로 만뢰정에 오르는 순간, 신성보험은 오백 개의 하품 영석 부채를 떠안고 완벽하게 파산해 저승길 익스프레스를 타게 될 터였다.
“야, 이 미친 대사형 새끼야! 당장 내려오라고! 네가 죽으면 내 회사가 망한다고!”
지호가 이성을 잃고 소리쳤지만, 진태양은 오히려 눈을 빛내며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다섯 배의 천겁이라니! 하늘이 기어이 내 천재적인 재능을 시험하려는구나! 무인의 길은 역경을 뚫고 나가는 법! 제자들이여, 나를 따르라! 만뢰정으로 향한다!”
“와아아아! 대사형의 기상을 따르라!”
제자들이 진태양의 뒤를 따라 만뢰정 산길로 폭주하듯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호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뇌근육에 지배당한 그들의 귀에는 서생의 잔소리 따위 들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대로 둘 수는 없어. 피뢰 설비를 강제 가동해야 한다!”
지호는 만뢰정 정상에 설치해 둔 고정식 대형 대지 피뢰침을 원격 가동하기 위해, 품속에서 통신용 전음패(Transmission Jade)를 꺼내 들었다. 만뢰정 감시 초소에 대기 중인 신성보험 구조대원들에게 피뢰 진법의 접지 레버를 올리라고 명령하기 위함이었다.
“여보세요? 최팽락 씨! 들립니까? 당장 만뢰정 피뢰침 가동하세요! 전압 수치를 최대로 올리란 말입니다!”
치이이이익—
하지만 전음패 너머에서는 오직 기분 나쁜 영기 노이즈와 차가운 정적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최팽락 씨?! 들려요?! 임춘배 씨!”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통신망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다.
지호의 차가운 뇌리가 순간적으로 작동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연산해 냈다.
‘아니야. 이건 단순한 기상 이변이 아니야. 독고 가문이 낙신애의 에어백을 철거하겠다고 난동을 부린 것부터가 시선 분산용 미끼였던 거다. 진짜 목적은 오늘 밤 몰아칠 변종 천겁을 이용해 우리 회사를 파산시키는 것…… 배후는 흑응방주 염도현이다!’
그 시각, 칠흑 같은 어둠과 핏빛 뇌전이 휘몰아치는 만뢰정 정상.
거대하게 세워진 철탑형 피뢰침 아래, 검은 복면을 쓴 파괴 공작원 사마풍이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쇠톱을 쥐고 있었다.
슥, 슥, 슥…….
차가운 쇳소리와 함께, 피뢰침의 핵심인 굵은 구리 전도선이 미세하게 잘려 나가며 붉은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번개의 에너지를 땅속 천겁석 배터리로 안전하게 방류해야 할 대지 접지선이, 사마풍의 보이지 않는 쇠톱질 끝에 허무하게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하늘의 핏빛 먹구름이 마침내 만뢰정 정상을 향해 소용돌이치며 하강하기 시작했다. 세 시간의 시한부 카운트다운이 지호의 눈앞에서 피 말리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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