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습의 호가창
한도현의 지하 원룸에서 철야를 마친 뒤, 운명의 마감일 아침이 밝았다.
이곳은 아너스 국제학교 오라클 클럽하우스 지하에 위치한 ‘골드 링 비밀 세미나실’. 사방이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차갑고 밀폐된 공간에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초고속 금융 거래 단말기들이 푸른빛을 내뿜으며 윙윙거리고 있었다. 최고급 이탈리아제 가죽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나는 무도수 금테 안경을 가볍게 밀어 올렸다. 안경 렌즈의 특수 편광 코팅 덕분에 단말기 모니터의 번뜩이는 빛이 내 동공의 미세한 흔들림을 완벽히 감춰주고 있었다.
“지한아. 슬슬 포기하는 게 어때? 네 그 잘난 고집 때문에 한성그룹 서자라는 타이틀이 하루아침에 학내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생겼는데.”
맞은편에 앉은 서민준이 손목에 찬 최고급 스포츠 워치를 톡톡 두드리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옆에는 오라클의 재무 담당이자 서민준의 금융 브레인인 임태오가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노트북 키보드를 여유롭게 두드리고 있었다.
“마감 시간까지 정확히 15분 남았다, 서지한.”
임태오가 안경 너머로 차갑고 계산적인 눈빛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현재 네 모의 투자 계좌의 대영 바이오 매수 잔고는 평가 손실률 마이너스 42%를 기록 중이다. 네가 투입한 100억 원의 모의 자금 중 거의 절반이 날아갔다는 뜻이지. 반면 우리 골드 링 연합이 차명 계좌를 통해 대영 바이오에 걸어둔 10배 레버리지 공매도 포지션은 이미 수십억 원의 평가 이익을 내고 있어. 이제 인정해라. 너는 금융의 ‘금’ 자도 모르는 방탕아일 뿐이라는 걸.”
임태오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는 나를 오라클에서 영구히 매장하고 가짜 상속자의 가면을 찢어발기겠다는 잔인한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내 안의 ‘미세 표정 실시간 추적 기술’이 즉각 가동되었다. 서민준의 어깨는 승리를 확신한 듯 느긋하게 뒤로 넘어가 있었고, 임태오는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린 채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들은 완벽하게 속았다고 믿고 있었다. 대영 바이오가 대영그룹의 비자금 세탁용 페이퍼 컴퍼니이며, 오늘 오후 상장폐지 절차가 공식 개시될 것이라는 비밀 정보를 자신들만 쥐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오만한 금수저들은 단 하나를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쓰레기라 믿고 대영 바이오의 장부상 가치에서 0원으로 지워버린 ‘유전자 가위 원천 특허권’의 실소유주가 윤설아 가문(대영그룹)의 페이퍼 컴퍼니인 ‘라피스 홀딩스’에 은닉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밤새 한도현의 아지트에서 그 스위스 특허청의 비밀 연동 고리를 완벽하게 해킹해 찾아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왼쪽 손목에 채워진 서지한의 한정판 파텍필립 시계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시계 초침이 정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감 10분 전.
나는 주머니 속에서 암호화된 투폰을 꺼내 들었다. 오 집사의 그 어떤 도청 주파수도 우회하는 군용 보안 폰이었다. 나는 한도현과의 3중 암호 통신망을 통해 짧은 메시지를 전송했다.
[코드 그린. 지금 터뜨려.]
동시에 나는 단말기 키보드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빈민가 시절, 사채업자들의 협박 속에서 뼈를 깎으며 독학했던 실전 금융 분석력이 내 손끝을 통해 구동되기 시작했다. 대영 바이오의 남은 모의 자금 50억 원을 매수 호가창 가장 아래쪽에 촘촘히 배치했다.
“마지막 발악인가? 하긴, 잃을 게 없는 서자 놈이니 바닥에 남은 동전이라도 던져봐야겠지.”
서민준이 코웃음을 치며 태블릿으로 내 주문 내역을 모니터링했다.
그 순간, 세미나실 내부의 대형 호가창 모니터가 일제히 깜빡이기 시작했다.
파란색 하락 화살표로 가득했던 대영 바이오의 호가창이 갑자기 멈춰 섰다. 정적. 주식 거래가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정적 변동성 완화장치, 즉 ‘VI(Volatility Interruption)’가 발동된 것이었다.
“어? 왜 거래가 정지되지? 설마 상장폐지 공시가 벌써 떴나?”
임태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노트북 화면을 급히 새로고침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대영 바이오 상장폐지 절차 개시’라는 파멸적인 공시가 떠야 했다. 하지만 임태오의 모니터에 나타난 것은 전혀 다른 헤드라인이었다.
[속보: 대영 바이오, 스위스 특허청에 ‘3세대 유전자 가위 원천 특허권’ 독점 사용권 전격 등록 확인. 가치 산정 불가능 수준.]
동시에 대한민국 증권가 찌라시 채널과 아너스 국제학교 익명 커뮤니티에 한도현이 기획한 ‘가짜 투자 찌라시 살포 기술’이 동시다발적으로 가동되었다.
[찌라시: 대영 바이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와 3조 원 규모의 특허 라이선스 아웃 계약 임박. 라피스 홀딩스 지분 우회 인수 완료.]
“이, 이게 뭐야? 원천 특허권이라니? 라피스 홀딩스는 또 왜 나와?”
서민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에서 오만한 미소가 순식간에 증발하고, 흙빛으로 변해갔다.
“태오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상장폐지라며! 쓰레기 주식이라며!”
“잠깐만, 민준아. 뭔가 오류가 있어. 재무제표에는 이런 특허권 자산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는데……!”
임태오가 미친 듯이 마우스를 클릭하며 대영 바이오의 연결재무제표 각주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이미 내가 해킹으로 분석해 둔, 세금 회피를 위해 이중 장부로 숨겨져 있던 합법적인 특허 양도 합의서의 흔적뿐이었다.
따르릉!
그 순간, VI가 해제되며 거래가 재개되었다.
대영 바이오의 주가는 아래쪽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15%, +30%, +80%…….
호가창에 표시된 매도 잔량이 단 1초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서민준과 임태오 일파가 대거 쳐두었던 공매도 물량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다.
공매도 세력은 주가가 폭등할 때 자신들의 손실을 막기 위해 시장가로 주식을 강제로 되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실률이 무한대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금융 시장에서 가장 잔혹하다는 ‘숏커버링(Short Covering)’의 시작이었다.
“매도 물량이 없어! 주식을 살 수가 없다고!”
임태오가 소리를 지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하지만 이미 상한가 근처까지 치솟은 호가창에는 매수 대기 물량만 수백만 주가 쌓여 있을 뿐, 단 한 주의 매도 물량도 나오지 않았다. 완벽한 ‘숏스퀴즈(Short Squeeze)’의 완성이었다.
“마진콜입니다! 서민준 도련님 계좌, 증거금 부족으로 강제 반대매매 나갑니다!”
단말기 경고음이 세미나실 내부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서민준이 10배 레버리지를 일으켜 대영 바이오에 걸어두었던 200억 원 상당의 공매도 차명 계좌들이 차례대로 강제 청산당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표시된 서민준의 계좌 잔고가 순식간에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치며 붉은색 경고등을 내뿜었다. 하룻밤 사이에 그들이 가문에서 끌어다 쓴 비자금과 사설 투자 자금 200억 원이 공중분해 되는 순간이었다.
“아, 안 돼……! 내 돈……! 우리 아버지 차명 주식이 담보로 잡혀 있단 말이야!”
서민준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모니터 앞으로 쓰러졌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눈동자가 풀려갔다.
툭.
임태오는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고 들고 있던 비스포크 노트북을 차가운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노트북 화면이 쩍 갈라지며 푸른 불꽃이 튀었지만, 그는 그것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듯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 특허권의 존재를 안 거지? 서지한,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임태오의 목소리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어깨를 거만하게 뒤로 젖히고, 하 턱을 살짝 들어 올려 그들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내 왼쪽 손목의 파텍필립 시계가 모니터 빛을 받아 기괴하게 반짝였다.
나는 안경을 벗어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오라클의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오라클 골드 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으로 카드를 부드럽게 집어 올린 나는, 그것을 내 교복 안주머니에 슬며시 밀어 넣었다. 내 입술 사이로 서늘하고 오만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임태오. 3일에 15%는 너무 시시하다고 했잖아.”
나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서민준과 넋이 나간 임태오를 향해 차갑게 읊조렸다.
“내 계좌의 최종 수익률은 800%다. 이제 이 골드 링의 진짜 주인은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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